투표율 높일 대책 세워야

18대 총선은 흥미진진한 승부와 화제의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그 흥미에 못지않은 걱정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 46.0%는 17대 총선에 비해 무려 14.6%, 역대 총선 최저투표율로 기록되었던 16대에 비해서도 11.2%가 떨어졌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제주도도 53.5%에 불과했고 서울은 45.7%, 인천은 42.2%를 기록했다.

투표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투표 참여자에게 고궁과 박물관 입장료 할인혜택을 주는 인센티브제가 처음 실시된 것이 한가지 사례다. 교통이 불편한 도서지방이나 산간벽지 유권자들을 위해 1000여대의 차량과 20여척의 선박편을 제공하는 배려도 있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 적나라하게 드러나

투표율이 저조하자 9일 오후에는 유권자 개개인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메시지 호소작전도 있었다. 필자가 받은 메시지는 “투표율 저조! 남들이 하겠지 생각 마시고 소중한 한표 꼭 행사하시길 바랍니다”였다.

발신자 번호를 식별할 수 없어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발신자가 선관위 측이건 투표율이 낮으면 불리하다고 생각한 특정 후보 측이건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적극적인 참여 캠페인이 있었는데도 직접선거 제도의 마지노선이라는 50%를 크게 못 미친 것은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국 규모 선거의 최저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 때의 48.9%였다. 총선거가 지방선거 최저투표율보다 낮아진 것은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투표율이 50%가 안되면 당선자가 40%를 얻었다고 해도 전체 유권자 20%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셈이다.

득표율이 30%대로 내려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투표율 30%대인 선거구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 30%대 선거구가 20곳이었다. 경기 시흥을 선거구는 34%였다. 이런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를 했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각 언론매체들은 투표율이 갑자기 낮아진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 한다.

“귀찮기도 하고, 내가 투표해 봐야 청년실업문제가 해결되거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누굴 찍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안했다.” “늘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지쳤다. 공천싸움을 보면서 마지막 기대까지 접고 맘 편하게 여행이나 다녀왔다.”

신문에 보도된 이런 코멘트는 50%가 넘는 기권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공약이나 정책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없었던 것도 ‘흥행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각 정당의 공천이 너무 늦어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충분히 알 시간이 없었던 것도 큰 요인이다.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선진국들처럼 누가 되든지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정치보다는 여행이나 스포츠 같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러시아는 투표율 50% 안되면 선거 무효화

미국의 국회의원 투표율은 평균 45%, 일본은 1990년대 이후 평균 57%, 영국은 6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그렇게 낮은 것은 총선거가 아니라 중간 선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나라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민주화한 것도 아니고 국민소득으로 보면 까맣게 먼데 투표율만 닮아간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싱가포르나 오스트레일리아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기권자에게 벌칙을 가하기도 하고 러시아같은 나라는 투표율이 50%가 못 되면 선거를 무효화시킨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인 대책은 곤란하지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책들을 연구해야 할 시점에 왔다. 전자투표 제도 도입, 부재자 투표방법 개선, 도서벽지 지역 투표환경 개선 같은 것은 적극 검토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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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에서 돈뭉치를 돌리던 한나라당 예비공천자가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흙탕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날 오래 기다린 단비가 왔지만 흙탕물은 싫은 법이다. 사건이 난 곳이 하필이면 연고지여서 더욱 께름칙했다. 순박한 사람들이 줄줄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고 내가 당할 일처럼 두렵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청도군수 재선거 때 돈봉투 받은 주민 수백명이 경찰서에 불려다닌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마음이 이번 같지는 않았다. 연고지 일이라서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라지만 개혁공천의 이름 아래 후보로 ‘영입’된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과연 부패정당 전통이 연면하구나 싶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사건 이래 비리 전력자에게는 공천신청 자격도 주지 않겠다더니 그에게만은 재심까지 해가면서 무리한 공천을 주었다. “한나라당은 돈 선거 DNA를 가진 정당”이라는 야당의 공격을 무슨 말로 반박할 것인가.

국회 노동위 돈봉투사건 주역

그는 그 지역에서 해바라기 정치인, 철새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정권이 바뀌면 햇살 좋은 양지쪽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그에게서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 미국 유학가서 박사학위 받아오고 잘 나가는 기업을 물려받은 재벌가 2세라서 여당 공천 하나는 잘 따는구나 했다.
그는 16대 총선 때 같은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17대 때는 열린우리당 실세와의 공천경쟁에서 패해 당적을 한나라당으로 옮겼고, 이번에 같은 지역구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그의 신청을 접수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예상을 깨고 공천 내정결정을 내렸다. 이것을 당 지도부가 문제삼아 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1993년 국회 노동위원회 ‘돈봉투 사건’으로 실형선고를 받은 전력과 ‘철새’성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래도 심사위는 그에게 공천을 주었다. 심사과정에서 돈봉투 사건이 거론되자 한 당직자는 “국회 돈봉투 사건은 비리가 아니라 노사분규 관련 사건이므로 공천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상대후보에게 이길 가능성도 높다 했다던가.

그의 전력을 모르지 않을 공당의 공천심사위원들 윤리관이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부패정당이라는 비난에 반발할 자격이 없다.
국회 돈봉투 사건이란 이번 말썽의 당사자가 자동차보험 사장으로 있을 때의 사건이다. 노사분규와 관련해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리다 적발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부패가 아니라면 한나라당의 부패는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많은 심사위원들이 그 주장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돈봉투를 받고 눈감아 주었다는 오해를 받은들 무슨 논리로 반박을 할 것인가. 선거구민들에게 돈질을 하는 사람이 당에 그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민주당이 비리 전력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 아들과 비서실장 등 유력정치인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을 때, 한나라당은 “우리는 그런 사람 신청도 안 받는다”고 공언했다. 차떼기사건 이후 천막당사 생활을 하면서 부패전력자는 공천신청도 하지 못 하도록 당헌과 당규를 바꾸어 부패정치인 배제를 시스템화했다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번 선거는 전에 없이 깨끗한 선거가 되려나 했다. 망신을 당할 만큼 당하더니 정신을 차렸나 싶기도 했다. 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도 영남지역 공천에서 국회부의장과 당 최고위원을 포함한 거물 정치인이 많이 탈락했다. 겉보기에는 탈락률도 높고 유력 정치인 탈락도 더 많아 뭔가 변화가 보이는 것 같았다.

‘공천신청도 안 받는다’더니

그런 기대와 관심도에 한나라당은 돈뭉치 사건으로 응답했다. 민심이 부글부글 들끓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인책론만 무성할 뿐 두 패로 갈라진 세력 간의 ‘네 탓’ 공방뿐이다.
돈뭉치를 받은 정선사람만 구속이라는 날벼락을 당하고 당사자와 책임질 당직자들은 ‘재수 없는 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러고도 ‘안정 의석’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국민성공 시대를 만들겠다더니 ‘성공한 국민만의 시대’가 되었다”는 시정의 쑥덕거림이 한나라당 사람들에게는 왜 들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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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랑 2008/04/0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나라당의 구성원들 성향이 그러하니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돈봉투, 성추행 등 볼썽사나운 일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대운하, 국민에게 물어보라

한반도대운하 건설 문제는 오는 4월9일 총선 때 국민의 생각을 직접 물어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대규모 국책사업은 국민투표 같은 절차를 거쳐 결정해야 반대세력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대운하사업은 영락없는 국민투표 감인데 때마침 총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안성맞춤 아닌가.

국민투표란 하자 말자 하는 논의에서부터 하기로 결정되면 날 잡고, 준비하고, 국민에게 투표를 부탁하는 일 등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그런데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 치르게 되는 총선거보다 국민의 뜻을 알아보기 좋은 찬스가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대표공약은 한반도대운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선 기간 중 대운하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BBK 의혹, 경제 살리기 같은 당면 이슈에 정신이 팔려 뒷전으로 밀린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운하가 정면으로 화제에 오르는 것 자체를 기피했다. 반대의견을 가진 유권자들을 자극해서 손해볼 일이 무어냐는 생각인 것 같았다.

한나라당 총선공약에서 대운하 사라져

그런데 4·9 총선에서도 대운하는 또 공식이슈가 되지 않게 되었으니 이상한 일이다. 한나라당 총선공약에서 대운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나라당 정책 담당자는 한 언론사의 질문에 대해 “대운하 문제로 오해를 빚거나 불완전한 부분을 잘 다듬어 국민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보완도 안 된 것을 공약에 덜컹 넣어서 괜스레 이슈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운하 얘기가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 다듬어야할 것이 있다는 말인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총선공약에 올려 법으로 보장되고 비용까지 지원되는 정책홍보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옳지, 공약에서 빼고 언제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것인가.

청와대 관계자들도 “대운하와 새만금사업 등은 총선 이후에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총선에서는 이슈로 삼지 않겠다는 속내가 드러나는 언급이다.
대통령의 얼굴 공약인 대운하 문제를 두 번이나 국민의 심판대에서 내려놓는 것은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서울시 부시장 출신의 건설행정 경력자를 내세워 곧 착공할 것처럼 서두른 것이 불과 두 달 전 일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는 발표가 있었고, 대형 건설사들이 재빨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사 수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근래의 동향이다. 엊그저께는 대운하 건설예정지인 경기도의 한 군에서 ‘한반도대운하 지지결의대회’가 열렸다.

공식적으로는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일이므로 정부로서는 추진계획이 없다”면서도 이렇게 기정사실이 되어 굴러가는 초대형 국책사업을 총선 공약 리스트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것은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대운하에 대한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불안해서일까. 대선 당시만 해도 찬성과 반대가 엇비슷했지만, 갈수록 반대여론이 확산되는 추세가 무서운 모양이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에는 찬성 39.9%, 반대 49%였다. 그러다가 2월에는 38.7 : 52.3%, 3월에는 31.6 : 58.4%로 격차가 벌어졌다. 조사기관마다 조금씩 수치는 다르지만 찬성보다 반대가 많아지는 것은 일관된 추세다.

총선 끝나면 다시 들고 나올 것인가

한나라당이 대운하를 총선공약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속내를 거기서 읽을 수 있다. 총선이 끝나면 다시 들고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상상하기도 두려운 모습이 그려진다. 사업추진 세력들은 제철 만난 무엇처럼 활개를 칠 것이고 반대운동은 그에 조금도 밀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스님 한 사람의 반대투쟁으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구간 공사가 오래 중단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운하 반대운동에는 범종교적 연대가 형성되었고 환경운동가들과 지식인·문화인 사회에도 만만치 않은 저지운동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그런 반대를 물리치고 밀어붙일 것인가. 그렇게 해서 ‘경제’를 얻은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의 몫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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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MB 2008/03/24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숨어서 하는 정책이 잘되는 것을 본 일이 없는데 미련한 일들을 하고 있네요...
    좋은 글 보고 갑니다.

  2. 알칸펠 2008/03/25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운하란 짓거리 자체가 미친 짓이고, 저딴 개수작을 부리는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악마들의 집단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공천개혁’의 기대와 우려

한국인의 의식에는 ‘공천 = 밀실 + 돈’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거기에 나눠먹기라는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력자 한 사람의 의중이 공천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3김 시대에도 그 등식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밀실’ 이미지는 완화되었지만, ‘돈’ 과 ‘나눠먹기’ 이미지는 짙어졌다.

4·9 총선이 한 달도 못 남은 시점에서 발표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민주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은 일단 국민의 기대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13일 발표된 양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에는 거물 정치인들이 많이 빠졌다. 한나라당 영남지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계파 좌장격인 당 최고위원을 비롯, 국회부의장 등 현역의원 25명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현역의원 탈락률이 무려 43.5%에 이른다.

최고위원과 대선후보 등 유력정치인 탈락

민주당에서도 지난해 12월 대선후보 경력자, 전직 대통령 아들 등 유력정치인 15명이 탈락했다. 개인비리 대상자 공천배제 원칙과 기준 발표에 이은 연쇄 개혁공천 폭풍이다. 기성정치인 공천탈락이 많아야 개혁인지, 정치신인이 기성정치인보다 유능하고 깨끗한지는 단언할 수 없다. 신인의 등장이 봇물을 이루었던 17대의 경우를 보면 ‘참신함 = 유능함 + 도덕적’이라는 등식도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클수록 새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 한국인의 취향이다. 실망할 때 실망하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이 유권자 생리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과반수의 외부 인사로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를 구성한 것과 위원장을 외부인사에게 맡긴 양당의 개혁공천 실험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정당의 공천을 정치권 바깥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니 정치선진화라고 자랑할 만도 하겠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민주선거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공천이 너무 지지부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궁금증을 키우는 것이 그런 이중구조의 산물이라면 말이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껏 공천이 끝나지 않았으니 국민이 어떻게 투표권을 행사할 것인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불과 15일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자 개개인의 인물과 공약과 소속정당의 정책을 비교해보려면 공천자 발표는 빠를수록 좋다.

선거법이 바뀌어 후보자 합동연설회도 없어지고 공·사석에서 후보자를 접촉해 인물을 평가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언론매체를 통한 토론회 등 정보취득의 기회가 열려 있다지만 총선에서는 활용도가 높지 않은 채널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누가 누구와 대결하게 되나 하는 기본적인 궁금증으로 목말라 있다. 그런데도 양당은 공식선거전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공천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선거가 전에도 있었던가.

공천경합이 심한 이른바 ‘화약고 지역’ 공천심사를 놓고 공심위와 양당 지도부가 볼썽사납게 대립한 것은 공심위를 형식적인 기구로 여기기에 충분한 이유다. 일찌감치 공천자를 내정 또는 결정해놓고도 “형평의 원칙상 일괄 발표해야 한다”는 당 지도부 입김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은 더욱 그런 의심을 사게 한다.

공천 지지부진 … 국민 알권리 침해

공천심사 회의장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잡음은 더 절망적인 메시지다. 일부 지역 공천내정자 명단이 흘러나왔을 때 박근혜 전 대표는 ‘기가 막힌 일’ ‘이렇게 잘못된 공천’ 같은 격한 표현을 동원해 상대측을 비난했다. 비주류 측 반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공천발표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탈락 대상자들은 더 심한 말과 행동으로 반발하고 있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공천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공심위 제도를 폄하한다. 국민의 마음을 사려는 진정의 왜곡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공심위를 견제하는 당 지도부 입김의 강도를 보면 억울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은 지역 공천 마무리와 전략공천을 둘러싸고 한 번 더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밀실공천, 나눠먹기 공천이란 묵은 이미지의 딱지를 떼기 어렵다는 것을 두 당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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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공천,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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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정치인에 목마르다

거물 정치인과 옛 권력자 측근들이 줄줄이 공천심사 대상에서 탈락한 통합민주당 ‘공천혁명’은 청량제 같은 소식이었다. 한나라당 일부 공천심사에서 현역의원 등이 낙천당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일이다.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이 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탈락된 것이나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 명단에서 4선 의원을 포함한 현역의원 5명이 밀려난 것은 도덕적이고 참신한 정치인을 원하는 국민정서에 대한 응답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분란이 그치지 않으니 아직 우리 정치의 수준은 멀었나보다.

신문지면을 장식한 ‘공천 쿠데타’ ‘박재승의 반란’ ‘공천폭풍’ ‘공천파란’ 같은 어휘에는 도덕적인 정치인을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이 녹아 있다. 아직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보는 것이 좀 이른 감도 있지만 유명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탈락하게 된 사실 하나 만으로도 지나친 평가 같지는 않다.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

당 지도부는 ‘정치현실’을 이유로 선별구제를 요청했다지만 민주당 공천심사위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기준을 밀어붙였다. 당의 요구대로 개별심사를 했으면 꿈도 꾸지 못할 공천혁명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예상 밖의 결정이 있었던 것도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이라 할 것이다.

그간의 공천행태가 어떠했던가를 돌아보면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냉소를 짐작할 수 있다. ‘돈 공천’ ‘밀실공천’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거액의 정치헌금이나 영수 및 계파 보스들의 줄세우기에 좌우된 것이 지난날 하향식 공천의 관행이었다.

그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충분한 견제세력을 확보하자는 것이 이번 통합민주당 공천개혁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래 이명박정부는 국무위원을 포함한 중요 인사에서 거듭 악수를 두어 국민의 실망을 샀다. 마땅히 반대 정치세력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갈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국민에게 변화를 증명할 특별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게 당내의 공통된 위기의식이었다.

뇌물, 알선수재 같은 형사사건에 걸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기준에 걸리는 사람은 유명 정치인만 10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과 비서실장을 비롯해, 현역 국회부의장, 전직 장관과 정권 실세들이 포함되어 있다. 탈락 대상자들과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없을 사람들이 그 소식에 그토록 환호하는 것은 깨끗한 정치인에 대한 목마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물론 법적으로는 피선거권을 침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의 신임을 회복하기 위해 ‘깨끗한 정치인’을 기준으로 정한 것은 당 지도부와 공심위의 합의사항이었으므로 당 공식기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옳다.

탈락 대상자는 대부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복역했거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알선수재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자는 소수다. 억울함과 불편한 심기를 호소할 수 있다. 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받은 것도 당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적도 없는 사람이 공천권을 쥐고 흔든다”는 노골적인 반발도 솔깃하게 들릴 수 있다.

꼭 정치하고 싶다면 당 떠나 무소속으로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불평의 목소리가 클수록 그릇이 더 적어 보인다. 정치자금법이건 알선수재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을 위반해 형이 확정되었던 ‘죄인’이다. 꼭 정치를 하고 싶다면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정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나라 당 탈락자는 경우가 다르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민주당에는 의정활동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람까지도 가려내겠다는 분위기가 있다. 적절하지 않은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을 기억한다면 국민이 왜 그토록 정치인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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