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린 국민참여 재판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국민 참여재판은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주권행사 길이 열렸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에 대한 국민의 참여는 그런대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유독 사법권에 한해서만은 ‘그들만의 재판’이라는 인식의 울타리가 둘러쳐졌던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 재판을 취재한 보도진은 “왜 진작 이렇게 친절한 재판제도를 갖지 못했는지 아쉬웠다”는 요지의 감상을 보도하고 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들도 “딱딱한 법정이라는 선입견이 싹 가셨다” “재판부에 의견을 전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로 새 제도를 평가했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첫 국민 참여재판에 대한 일반의 평가까지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사실은 우리 국민의 성숙성을 입증한 사례라 하겠다. 피고인의 유·무죄 평결에서 양형에 이르기까지 배심원단과 재판부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민의 법 상식과 감정이 매우 건전하다는 증거였다.

‘국민의 법 상식과 감정 매우 건전’ 입증

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법조계가 가장 우려했던 점은 배심원들이 어려운 법률용어와 까다로운 재판절차에 대한 선입견으로 지레 움츠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법률지식에 해박한 사람을 가려 뽑은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추출된 일반 시민 가운데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이 피고인의 유·무죄와 양형까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깨끗이 씻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 등 재판의 당사자들이 쉬운 말로 재판절차와 사건경과, 재판의 쟁점 등을 설명한 것이 주효했다고 한다. 전문지식이 없는 배심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변론과 논고를 문서로 만들어 낭독하는 것으로 끝나던 종전의 재판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변화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피해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범행현장에서 검거된 것을 자수로 볼 수 있느냐’ 여부였다. 검사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상처가 가벼운 사실을 알고 동행자에게 범행신고를 부탁한 사실을 들어 자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동행자에게 여러 차례 신고를 부탁한 행위는 자수라는 것을 배심원단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피고인의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을 증인석에 세워 오빠의 딱한 처지를 하소연하게 한 것도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배심원들은 변호인 편을 들어주었다. 감성에 호소한 변호인의 작전이 승리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재판부는 주저없이 그 의견을 받아들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물론 강도상해죄는 집행유예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범행 직후 피해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신고를 부탁한 행위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제도 정착 위해 예산과 인력 보충해야

이번 재판 배심원 후보는 230명에게 통보되었다. 이 가운데 개인적인 사정이 인정된 사람을 제외하고 86명이 법원에 출석해 추첨으로 12명이 뽑혔다. 예상보다 훨씬 높은 40% 가까운 출석률에 고무된 법원 측에서 제도 정착을 낙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그러나 더 손봐야 할 사안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국민 참여재판 기회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재판의 대상은 살인·강도·강간 같은 강력범죄와 고액 뇌물사건 피고인 가운데 희망하는 경우로 국한돼 있다.
올해 들어 이 재판 받기를 신청해 결정이 된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신청을 해도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공적인 제도 출범의 영향으로 신청자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형식적인 재판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제 국민 참여재판이 좋기는 하지만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드는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원은 당당하게 부족한 예산과 인력 보충을 요구하고 관계당국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심정으로 적극 뒷받침해야 모처럼 좋은 평판을 받은 제도의 정착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내일신문('08. 2. 15)과 동시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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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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