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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더니, 차떼기 당 낙천자들이 모인 당은 할 수 없더군.”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간다고 안 샐까!” “나는 깨끗한 옥양목이요, 하던 당들도 다 마찬가지던데 뭘!” “그래도 차떼기 당 탈락자 정당보다는 좀 낫더라.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 숙이는 걸 보면 말이야.” “돈 받아먹고 공천해준 사람들이 돈 받은 건 시인하면서도 대가성 없는 차입금이라고 잡아떼는 걸 보면 측은한 생각도 들더라.” “돈 받은 것 확인됐으면 잡아넣을 일이지, 대가성 수사는 또 뭐야!” 4·9총선 비례대표 ‘돈 공천’이 화제에 오른 점심모임에서 저마다 저 한마디씩 내뱉은 말들이다. 좀 심한 비유와 감정에 치우친 말이긴 하지만 그대로 인용해 본 것은 정치인에 대한 ‘뿔난 민심’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함이다. 전문직 등용 참뜻 외면 비난의 화살은 친박연대라는 급조정당에 빗발처럼 쏟아졌다. 비례대표 1번 후보가 16억5000만원을 낸 사실이 들통난 데다가 지역구 당선자 한 사람이 10억원을 뿌린 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와 관련해서는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주고받을 수 없도록 개정된 선거법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어쩌자고 그렇게 간 큰 일을 저질렀는지 참 모를 일이다. 이 정당의 대표가 한 일은 너무 비상식적이다. 비례대표 1번 후보자를 혼자 결정해 ‘공천이 아니라 사천(私薦)’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그렇고, 선거 홍보대행 업무를 자신의 가족이 이사로 있는 회사에 맡겨 예산을 집행한 것도 당을 사당(私黨)처럼 주물렀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한 월권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는 ‘돈 공천’이니 ‘錢國區’니 하는 비난을 샀던 전국구 제도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각 분야별로 전문성 있는 인사들과 소수자 대표들을 의회정치에 참여시켜 구석구석 국민의 뜻을 반영시키자는 취지다. 그래서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 의원이 태어났고 시민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의사당에 자리를 갖게 되었다. 각 정당의 비례대표 홀수 번호가 여성 몫으로 굳어진 것도 그 제도의 정착을 상징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관례에 비추어 보면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 양정례 당선자는 적임자가 아니었다. 그는 돈 많은 사업가를 어머니로 둔 부유층이고 전문성과도 거리가 먼 너무 평범한 보통 여성이다. 도덕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하였다. 학력과 경력이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박사모란 단체에 가입한 사실도 없는 사람이 그 단체 여성회장 경력을 내세웠다. 어머니가 이사장인 무슨 연구소의 연구관이라는 것도 상식에 반하는 직함이다. 이런 부풀리기 허위경력 의혹에 대해 그는 “당 실무자의 실수”라고 말했다. 경력이라는 것은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남이 알 수 없는 것이다. 공천신청서는 본인이 써넣은 대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지 당 실무자가 의원 후보자 학력과 경력을 마음대로 써넣을 수는 없는 공문서다. 재산신고에서는 남편 재산을 빠트렸다. 결혼한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그가 16억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당에 냈다는 대목에서는 대번에 ‘아하 그랬구나’ 싶어진다. 처음에는 1억원이라더니, 검찰에 불려가 15억5000만원 더 낸 것을 실토한 모양이다. 그를 발탁한 당 대표는 “선거 비용이 없어 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돈을 낸 대가로 비례대표 1번을 준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가성이란 무엇인가. 무명의 젊은 여성이 서민들은 마음도 먹지 못 할 돈을 내고 ‘정계의 신데렐라’가 되었는데 그것이 공천대가가 아니라면 삼척동자도 웃을 것이다. “등록마감 전날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마감 30분을 앞두고 팩스로 받은 명단에 비례대표 1번으로 올라 있어 놀랐다”는 한 당직자의 실토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현실정치에 배반감·절망감 옥양목처럼 희고 깨끗하다던 정당들도 진흙탕에서 놀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정정치를 표방한 신생정당이나, 공천혁명 한다고 요란했던 야당마저 비례대표 당선자에게서 거액을 빌렸다니 이제 무슨 낯으로 ‘깨끗한 정치’를 입에 담을 것인가. 현실정치에 이런 절망감과 배반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여야 모두 부패 전력자의 공천을 배제하겠다면서 클린공천을 외치던 구호를 떠올리면 마치 야바위 사기극을 당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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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12 투표율 높일 대책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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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30 한나라당의 돈선거 DNA (1)
- 2008/03/24 대운하, 국민에게 물어보라 (2)
- 2008/03/18 "공천개혁"의 기대와 우려
- 2008/03/18 깨끗한 정치인에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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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자율적 운영을 옥죄는 갖가지 규제가 풀리게 되어 교육계가 시끌시끌하다. 교육과학부가 15일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한 뒤 일선 교육당국과 교사 및 학생들은 물론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사이에 찬반양론이 무성하다. 다른 행정 분야에서는 규제가 풀릴수록 환영이다. 시민생활이나 기업활동 어떤 분야건 정부의 간섭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민생활 모든 분야는 구성원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에 맡기는 것이 민주사회의 제 모습이다. 그런데 일선 교육당국과 학교에 자율권을 주겠다는 데도 이렇게 시끄러우니 교육문제는 역시 국민 개개인에게 가장 민감한 관심사인 모양이다. 교육과학부가 발표한 ‘학교자율화 3단계 추진계획’은 초중고교 운영에 대해 장관의 포괄적인 장학 지도권을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제7조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교원인사권을 각 지방 교육감에게 이양하고 교육현장의 민감한 현안인 우열반 편성, 0교시 수업, 심야 보충수업, 사설 모의고사, 방과 후 학교 학원 개방 등을 교육감 또는 학교장 재량에 맡기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역별 학교별로 원하는 것은 허용해야 행정은 지방정부 또는 주민자치에 맡기고 중앙정부는 지방행정이 큰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에 그쳐야 한다는 자치행정의 이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규제와 제약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하물며 지역에 따라, 계층에 따라, 학업성취도에 따라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교육현안에 대해 중앙정부가 일률적인 잣대로 규제일변도의 정책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이 조치에 대해 전교조는 16일 정부 중앙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교육의 공공성을 포기한 정책”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교육 대재앙의 선포’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진보적인 성격의 학부모 단체들도 학생들의 입시경쟁 스트레스 가중을 우려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에 한국교총 같은 교원단체는 “실질적인 지방교육 자치를 이룰 절호의 기회”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같은 항목이라도 세부항목에서 또 의견이 갈리게 돼 있다. 한쪽의 목소리에 다른 한쪽의 목소리가 파묻혀서는 안된다. 한 언론사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중등교육국장 등 핵심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 지역에 따라 항목에 따라 각양각색의 의견이 나왔다. 가장 민감한 우열반 문제에 관해서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인가 하면, 지방에는 분명한 반대와 찬성 의견이 공존했다. 같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심야 보충수업, 사설학원 모의고사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교원인사권 이양에 대해서는 모든 응답자가 찬성이었다. 바로 그것이다. 지역별로 학교별로 원하는 것은 하고 싫은 것은 물리치면 된다. 방과후 사설학원 강사를 초청한 학습지도 문제만 해도 사교육이 성행하는 도시지역에서는 학부모도 학생도 외면할 것이다. 그러나 학원이 없는 시골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학교교육 이외의 교육을 받아볼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므로 무조건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규제 푼다고 너무 빨리 나가는 조급성이 문제 문제는 규제를 푼다고 너무 빨리 나가는 조급성이다. 교육과학부는 3단계 학교자율화 조치와 함께 일선 학교에 대한 29개 지침까지 모두 폐지해 버렸다. 이 속에는 교사에게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지침, 부교재 채택 부조리를 막기 위한 부교재 선정 지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선 교육현장에 만연되어 문제가 끊이지 않는 부조리 근절 장치까지 규제로 보아서는 안된다. 지방 관서가 대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편달하고, 잘 하는 것은 상을 주어 더욱 잘 하게 하는 조장행정이 중앙 행정기관이 지향할 방향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도록 이끌어주고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각각의 존재이유다. 과외교육과 성적경쟁을 무슨 범죄인 양 거부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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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높일 대책 세워야
18대 총선은 흥미진진한 승부와 화제의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그 흥미에 못지않은 걱정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 46.0%는 17대 총선에 비해 무려 14.6%, 역대 총선 최저투표율로 기록되었던 16대에 비해서도 11.2%가 떨어졌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제주도도 53.5%에 불과했고 서울은 45.7%, 인천은 42.2%를 기록했다.
투표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투표 참여자에게 고궁과 박물관 입장료 할인혜택을 주는 인센티브제가 처음 실시된 것이 한가지 사례다. 교통이 불편한 도서지방이나 산간벽지 유권자들을 위해 1000여대의 차량과 20여척의 선박편을 제공하는 배려도 있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 적나라하게 드러나
투표율이 저조하자 9일 오후에는 유권자 개개인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메시지 호소작전도 있었다. 필자가 받은 메시지는 “투표율 저조! 남들이 하겠지 생각 마시고 소중한 한표 꼭 행사하시길 바랍니다”였다.
발신자 번호를 식별할 수 없어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발신자가 선관위 측이건 투표율이 낮으면 불리하다고 생각한 특정 후보 측이건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적극적인 참여 캠페인이 있었는데도 직접선거 제도의 마지노선이라는 50%를 크게 못 미친 것은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국 규모 선거의 최저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 때의 48.9%였다. 총선거가 지방선거 최저투표율보다 낮아진 것은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투표율이 50%가 안되면 당선자가 40%를 얻었다고 해도 전체 유권자 20%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셈이다.
득표율이 30%대로 내려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투표율 30%대인 선거구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 30%대 선거구가 20곳이었다. 경기 시흥을 선거구는 34%였다. 이런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를 했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각 언론매체들은 투표율이 갑자기 낮아진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 한다.
“귀찮기도 하고, 내가 투표해 봐야 청년실업문제가 해결되거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누굴 찍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안했다.” “늘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지쳤다. 공천싸움을 보면서 마지막 기대까지 접고 맘 편하게 여행이나 다녀왔다.”
신문에 보도된 이런 코멘트는 50%가 넘는 기권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공약이나 정책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없었던 것도 ‘흥행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각 정당의 공천이 너무 늦어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충분히 알 시간이 없었던 것도 큰 요인이다.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선진국들처럼 누가 되든지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정치보다는 여행이나 스포츠 같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러시아는 투표율 50% 안되면 선거 무효화
미국의 국회의원 투표율은 평균 45%, 일본은 1990년대 이후 평균 57%, 영국은 6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그렇게 낮은 것은 총선거가 아니라 중간 선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나라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민주화한 것도 아니고 국민소득으로 보면 까맣게 먼데 투표율만 닮아간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싱가포르나 오스트레일리아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기권자에게 벌칙을 가하기도 하고 러시아같은 나라는 투표율이 50%가 못 되면 선거를 무효화시킨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인 대책은 곤란하지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책들을 연구해야 할 시점에 왔다. 전자투표 제도 도입, 부재자 투표방법 개선, 도서벽지 지역 투표환경 개선 같은 것은 적극 검토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18대 총선은 흥미진진한 승부와 화제의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그 흥미에 못지않은 걱정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 46.0%는 17대 총선에 비해 무려 14.6%, 역대 총선 최저투표율로 기록되었던 16대에 비해서도 11.2%가 떨어졌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제주도도 53.5%에 불과했고 서울은 45.7%, 인천은 42.2%를 기록했다.
투표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투표 참여자에게 고궁과 박물관 입장료 할인혜택을 주는 인센티브제가 처음 실시된 것이 한가지 사례다. 교통이 불편한 도서지방이나 산간벽지 유권자들을 위해 1000여대의 차량과 20여척의 선박편을 제공하는 배려도 있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 적나라하게 드러나
투표율이 저조하자 9일 오후에는 유권자 개개인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메시지 호소작전도 있었다. 필자가 받은 메시지는 “투표율 저조! 남들이 하겠지 생각 마시고 소중한 한표 꼭 행사하시길 바랍니다”였다.
발신자 번호를 식별할 수 없어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발신자가 선관위 측이건 투표율이 낮으면 불리하다고 생각한 특정 후보 측이건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적극적인 참여 캠페인이 있었는데도 직접선거 제도의 마지노선이라는 50%를 크게 못 미친 것은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국 규모 선거의 최저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 때의 48.9%였다. 총선거가 지방선거 최저투표율보다 낮아진 것은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투표율이 50%가 안되면 당선자가 40%를 얻었다고 해도 전체 유권자 20%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셈이다.
득표율이 30%대로 내려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투표율 30%대인 선거구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 30%대 선거구가 20곳이었다. 경기 시흥을 선거구는 34%였다. 이런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를 했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각 언론매체들은 투표율이 갑자기 낮아진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 한다.
“귀찮기도 하고, 내가 투표해 봐야 청년실업문제가 해결되거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누굴 찍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안했다.” “늘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지쳤다. 공천싸움을 보면서 마지막 기대까지 접고 맘 편하게 여행이나 다녀왔다.”
신문에 보도된 이런 코멘트는 50%가 넘는 기권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공약이나 정책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없었던 것도 ‘흥행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각 정당의 공천이 너무 늦어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충분히 알 시간이 없었던 것도 큰 요인이다.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선진국들처럼 누가 되든지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정치보다는 여행이나 스포츠 같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러시아는 투표율 50% 안되면 선거 무효화
미국의 국회의원 투표율은 평균 45%, 일본은 1990년대 이후 평균 57%, 영국은 6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그렇게 낮은 것은 총선거가 아니라 중간 선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나라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민주화한 것도 아니고 국민소득으로 보면 까맣게 먼데 투표율만 닮아간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싱가포르나 오스트레일리아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기권자에게 벌칙을 가하기도 하고 러시아같은 나라는 투표율이 50%가 못 되면 선거를 무효화시킨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인 대책은 곤란하지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책들을 연구해야 할 시점에 왔다. 전자투표 제도 도입, 부재자 투표방법 개선, 도서벽지 지역 투표환경 개선 같은 것은 적극 검토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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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어린이 유괴살해와 성폭행미수 사건으로 세상이 들끓고 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살아만 있기를 간구했던 혜진이와 예슬이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은 피해자들만의 충격이 아니었다. 아이를 둔 부모나 가족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개연성이 아니라도, 반항능력이 없는 어린이를 범죄대상으로 삼은 비열함이 치를 떨게 했다. 이런 분노와 절망의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일산 어린이 성폭행미수사건이었다. 여자아이를 납치하려고 흉기를 휘두르고 발로 차는 범인의 동영상 자료를 보고도 단순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는 뉴스에 낙망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화가 난 대통령이 경찰서에 달려가 태만을 질책하자 한나절만에 “여기 있습니다” 하고 범인을 붙잡았다. 처벌 강화해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뉴스는 없었던 것만 못했다. 붙잡기 어려운 지능범이려니 했으면 그냥 잊어졌을 사건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질책이 끝나기가 무섭게 범인을 잡아 대령했으니 훔친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들켜 마지못해 내놓은 꼴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경찰을 믿고 어떻게 살겠느냐”는 개탄과 한탄은 엄살도 호들갑도 아니다. 하교시간이면 아이를 데리러 가는 엄마들이 학교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서울 송파구 같은 곳에서는 구청이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고 등하교 시간에 경비원을 교문 앞에 배치하고 있다. 경찰이 있는 나라에서 민간 경비원을 고용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표’를 의식한 정부와 정당마다 대책을 쏟아내기 바쁘다. 1일 국무회의에서는 어린이 성폭행사범 처벌을 강화하고 유전자감식 정보를 채취해 수사와 재판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개정 법률을 ‘혜진 예슬법’이라 부르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 사건을 잊지 말자는 뜻을 담았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전에 나왔던 대책들을 재탕삼탕한 것이다. 이런 ‘즉석구이’ 대책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까. 들여다보면 범죄자 처벌을 강화한 것 뿐 예방에 관한 것은 별로 없다. 어린이 상대 범죄자 처벌을 강화해 사회와 오랜 기간 격리시키는 것은 그 기간의 재범을 막을 수 있으므로 일정한 효력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일산사건의 경우도 범인을 오래 격리했으면 없었을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형벌이 아닌한 영원히 세상과 격리시킬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범죄의 발생을 막을 사회적인 시스템과 어린이 상대 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있다. 범행의사를 품었어도 감시망이 잘 되어 있으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법이다. 거기에 검거율이 높으면 더욱 마음먹기 어렵게 된다. ‘저지르면 붙잡힌다’는 인식이 생기면 욕구를 억제하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 시스템 확립이다. 학교 주변이나 어린이가 많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감시망과 보호망만이라도 촘촘히 짜야 한다. 어린이 범죄 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기구나 조직도 필요하면 검토해야 한다. 입버릇처럼 인력타령 예산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발상을 바꾸어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영국은 지역마다 경찰에 어린이학대 수사본부를 두어 각종 교육기관 단체 등과 연계해 우범자 정보교환, 예방교육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어린이 대상 범죄 예방시스템 확립 서두르자 성폭행이나 유괴같은 범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어린이의 신체나 정서에 위해가 되는 가벼운 가해행위들도 엄하게 처벌하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성인을 상대로 한 범죄보다 용이하다는 인식 때문에 어린이 상대 범죄의 유혹은 많을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자기보호 능력이나 피해의식이 미약하기 때문에 미수에 그쳐도 처벌을 받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도 그런 유혹을 키우는 요소다. 미국에서는 어린이를 집안에 혼자 두는 것도 위법이다. 귀여움의 표시로 여기는 가벼운 신체접촉도 범죄행위가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유도할 법제의 연구도 필요한 때가 되었다. 총선을 의식한 급조 대책만 쏟아낼 일이 아니라, 어린이 상대 범죄 예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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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에서 돈뭉치를 돌리던 한나라당 예비공천자가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흙탕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날 오래 기다린 단비가 왔지만 흙탕물은 싫은 법이다. 사건이 난 곳이 하필이면 연고지여서 더욱 께름칙했다. 순박한 사람들이 줄줄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고 내가 당할 일처럼 두렵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청도군수 재선거 때 돈봉투 받은 주민 수백명이 경찰서에 불려다닌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마음이 이번 같지는 않았다. 연고지 일이라서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라지만 개혁공천의 이름 아래 후보로 ‘영입’된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과연 부패정당 전통이 연면하구나 싶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사건 이래 비리 전력자에게는 공천신청 자격도 주지 않겠다더니 그에게만은 재심까지 해가면서 무리한 공천을 주었다. “한나라당은 돈 선거 DNA를 가진 정당”이라는 야당의 공격을 무슨 말로 반박할 것인가. 국회 노동위 돈봉투사건 주역 그는 그 지역에서 해바라기 정치인, 철새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정권이 바뀌면 햇살 좋은 양지쪽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그에게서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 미국 유학가서 박사학위 받아오고 잘 나가는 기업을 물려받은 재벌가 2세라서 여당 공천 하나는 잘 따는구나 했다. 그는 16대 총선 때 같은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17대 때는 열린우리당 실세와의 공천경쟁에서 패해 당적을 한나라당으로 옮겼고, 이번에 같은 지역구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그의 신청을 접수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예상을 깨고 공천 내정결정을 내렸다. 이것을 당 지도부가 문제삼아 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1993년 국회 노동위원회 ‘돈봉투 사건’으로 실형선고를 받은 전력과 ‘철새’성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래도 심사위는 그에게 공천을 주었다. 심사과정에서 돈봉투 사건이 거론되자 한 당직자는 “국회 돈봉투 사건은 비리가 아니라 노사분규 관련 사건이므로 공천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상대후보에게 이길 가능성도 높다 했다던가. 그의 전력을 모르지 않을 공당의 공천심사위원들 윤리관이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부패정당이라는 비난에 반발할 자격이 없다. 국회 돈봉투 사건이란 이번 말썽의 당사자가 자동차보험 사장으로 있을 때의 사건이다. 노사분규와 관련해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리다 적발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부패가 아니라면 한나라당의 부패는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많은 심사위원들이 그 주장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돈봉투를 받고 눈감아 주었다는 오해를 받은들 무슨 논리로 반박을 할 것인가. 선거구민들에게 돈질을 하는 사람이 당에 그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민주당이 비리 전력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 아들과 비서실장 등 유력정치인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을 때, 한나라당은 “우리는 그런 사람 신청도 안 받는다”고 공언했다. 차떼기사건 이후 천막당사 생활을 하면서 부패전력자는 공천신청도 하지 못 하도록 당헌과 당규를 바꾸어 부패정치인 배제를 시스템화했다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번 선거는 전에 없이 깨끗한 선거가 되려나 했다. 망신을 당할 만큼 당하더니 정신을 차렸나 싶기도 했다. 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도 영남지역 공천에서 국회부의장과 당 최고위원을 포함한 거물 정치인이 많이 탈락했다. 겉보기에는 탈락률도 높고 유력 정치인 탈락도 더 많아 뭔가 변화가 보이는 것 같았다. ‘공천신청도 안 받는다’더니 그런 기대와 관심도에 한나라당은 돈뭉치 사건으로 응답했다. 민심이 부글부글 들끓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인책론만 무성할 뿐 두 패로 갈라진 세력 간의 ‘네 탓’ 공방뿐이다. 돈뭉치를 받은 정선사람만 구속이라는 날벼락을 당하고 당사자와 책임질 당직자들은 ‘재수 없는 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러고도 ‘안정 의석’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국민성공 시대를 만들겠다더니 ‘성공한 국민만의 시대’가 되었다”는 시정의 쑥덕거림이 한나라당 사람들에게는 왜 들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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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국민에게 물어보라 한반도대운하 건설 문제는 오는 4월9일 총선 때 국민의 생각을 직접 물어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대규모 국책사업은 국민투표 같은 절차를 거쳐 결정해야 반대세력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대운하사업은 영락없는 국민투표 감인데 때마침 총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안성맞춤 아닌가. 국민투표란 하자 말자 하는 논의에서부터 하기로 결정되면 날 잡고, 준비하고, 국민에게 투표를 부탁하는 일 등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그런데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 치르게 되는 총선거보다 국민의 뜻을 알아보기 좋은 찬스가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대표공약은 한반도대운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선 기간 중 대운하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BBK 의혹, 경제 살리기 같은 당면 이슈에 정신이 팔려 뒷전으로 밀린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운하가 정면으로 화제에 오르는 것 자체를 기피했다. 반대의견을 가진 유권자들을 자극해서 손해볼 일이 무어냐는 생각인 것 같았다. 한나라당 총선공약에서 대운하 사라져 그런데 4·9 총선에서도 대운하는 또 공식이슈가 되지 않게 되었으니 이상한 일이다. 한나라당 총선공약에서 대운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나라당 정책 담당자는 한 언론사의 질문에 대해 “대운하 문제로 오해를 빚거나 불완전한 부분을 잘 다듬어 국민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보완도 안 된 것을 공약에 덜컹 넣어서 괜스레 이슈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운하 얘기가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 다듬어야할 것이 있다는 말인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총선공약에 올려 법으로 보장되고 비용까지 지원되는 정책홍보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옳지, 공약에서 빼고 언제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것인가. 청와대 관계자들도 “대운하와 새만금사업 등은 총선 이후에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총선에서는 이슈로 삼지 않겠다는 속내가 드러나는 언급이다. 대통령의 얼굴 공약인 대운하 문제를 두 번이나 국민의 심판대에서 내려놓는 것은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서울시 부시장 출신의 건설행정 경력자를 내세워 곧 착공할 것처럼 서두른 것이 불과 두 달 전 일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는 발표가 있었고, 대형 건설사들이 재빨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사 수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근래의 동향이다. 엊그저께는 대운하 건설예정지인 경기도의 한 군에서 ‘한반도대운하 지지결의대회’가 열렸다. 공식적으로는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일이므로 정부로서는 추진계획이 없다”면서도 이렇게 기정사실이 되어 굴러가는 초대형 국책사업을 총선 공약 리스트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것은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대운하에 대한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불안해서일까. 대선 당시만 해도 찬성과 반대가 엇비슷했지만, 갈수록 반대여론이 확산되는 추세가 무서운 모양이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에는 찬성 39.9%, 반대 49%였다. 그러다가 2월에는 38.7 : 52.3%, 3월에는 31.6 : 58.4%로 격차가 벌어졌다. 조사기관마다 조금씩 수치는 다르지만 찬성보다 반대가 많아지는 것은 일관된 추세다. 총선 끝나면 다시 들고 나올 것인가 한나라당이 대운하를 총선공약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속내를 거기서 읽을 수 있다. 총선이 끝나면 다시 들고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상상하기도 두려운 모습이 그려진다. 사업추진 세력들은 제철 만난 무엇처럼 활개를 칠 것이고 반대운동은 그에 조금도 밀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스님 한 사람의 반대투쟁으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구간 공사가 오래 중단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운하 반대운동에는 범종교적 연대가 형성되었고 환경운동가들과 지식인·문화인 사회에도 만만치 않은 저지운동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그런 반대를 물리치고 밀어붙일 것인가. 그렇게 해서 ‘경제’를 얻은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의 몫이 되겠는가. |
‘공천개혁’의 기대와 우려
한국인의 의식에는 ‘공천 = 밀실 + 돈’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거기에 나눠먹기라는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력자 한 사람의 의중이 공천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3김 시대에도 그 등식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밀실’ 이미지는 완화되었지만, ‘돈’ 과 ‘나눠먹기’ 이미지는 짙어졌다.
4·9 총선이 한 달도 못 남은 시점에서 발표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민주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은 일단 국민의 기대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13일 발표된 양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에는 거물 정치인들이 많이 빠졌다. 한나라당 영남지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계파 좌장격인 당 최고위원을 비롯, 국회부의장 등 현역의원 25명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현역의원 탈락률이 무려 43.5%에 이른다.
최고위원과 대선후보 등 유력정치인 탈락
민주당에서도 지난해 12월 대선후보 경력자, 전직 대통령 아들 등 유력정치인 15명이 탈락했다. 개인비리 대상자 공천배제 원칙과 기준 발표에 이은 연쇄 개혁공천 폭풍이다. 기성정치인 공천탈락이 많아야 개혁인지, 정치신인이 기성정치인보다 유능하고 깨끗한지는 단언할 수 없다. 신인의 등장이 봇물을 이루었던 17대의 경우를 보면 ‘참신함 = 유능함 + 도덕적’이라는 등식도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클수록 새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 한국인의 취향이다. 실망할 때 실망하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이 유권자 생리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과반수의 외부 인사로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를 구성한 것과 위원장을 외부인사에게 맡긴 양당의 개혁공천 실험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정당의 공천을 정치권 바깥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니 정치선진화라고 자랑할 만도 하겠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민주선거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공천이 너무 지지부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궁금증을 키우는 것이 그런 이중구조의 산물이라면 말이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껏 공천이 끝나지 않았으니 국민이 어떻게 투표권을 행사할 것인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불과 15일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자 개개인의 인물과 공약과 소속정당의 정책을 비교해보려면 공천자 발표는 빠를수록 좋다.
선거법이 바뀌어 후보자 합동연설회도 없어지고 공·사석에서 후보자를 접촉해 인물을 평가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언론매체를 통한 토론회 등 정보취득의 기회가 열려 있다지만 총선에서는 활용도가 높지 않은 채널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누가 누구와 대결하게 되나 하는 기본적인 궁금증으로 목말라 있다. 그런데도 양당은 공식선거전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공천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선거가 전에도 있었던가.
공천경합이 심한 이른바 ‘화약고 지역’ 공천심사를 놓고 공심위와 양당 지도부가 볼썽사납게 대립한 것은 공심위를 형식적인 기구로 여기기에 충분한 이유다. 일찌감치 공천자를 내정 또는 결정해놓고도 “형평의 원칙상 일괄 발표해야 한다”는 당 지도부 입김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은 더욱 그런 의심을 사게 한다.
공천 지지부진 … 국민 알권리 침해
공천심사 회의장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잡음은 더 절망적인 메시지다. 일부 지역 공천내정자 명단이 흘러나왔을 때 박근혜 전 대표는 ‘기가 막힌 일’ ‘이렇게 잘못된 공천’ 같은 격한 표현을 동원해 상대측을 비난했다. 비주류 측 반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공천발표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탈락 대상자들은 더 심한 말과 행동으로 반발하고 있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공천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공심위 제도를 폄하한다. 국민의 마음을 사려는 진정의 왜곡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공심위를 견제하는 당 지도부 입김의 강도를 보면 억울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은 지역 공천 마무리와 전략공천을 둘러싸고 한 번 더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밀실공천, 나눠먹기 공천이란 묵은 이미지의 딱지를 떼기 어렵다는 것을 두 당은 알아야 한다.
한국인의 의식에는 ‘공천 = 밀실 + 돈’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거기에 나눠먹기라는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력자 한 사람의 의중이 공천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3김 시대에도 그 등식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밀실’ 이미지는 완화되었지만, ‘돈’ 과 ‘나눠먹기’ 이미지는 짙어졌다.
4·9 총선이 한 달도 못 남은 시점에서 발표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민주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은 일단 국민의 기대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13일 발표된 양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에는 거물 정치인들이 많이 빠졌다. 한나라당 영남지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계파 좌장격인 당 최고위원을 비롯, 국회부의장 등 현역의원 25명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현역의원 탈락률이 무려 43.5%에 이른다.
최고위원과 대선후보 등 유력정치인 탈락
민주당에서도 지난해 12월 대선후보 경력자, 전직 대통령 아들 등 유력정치인 15명이 탈락했다. 개인비리 대상자 공천배제 원칙과 기준 발표에 이은 연쇄 개혁공천 폭풍이다. 기성정치인 공천탈락이 많아야 개혁인지, 정치신인이 기성정치인보다 유능하고 깨끗한지는 단언할 수 없다. 신인의 등장이 봇물을 이루었던 17대의 경우를 보면 ‘참신함 = 유능함 + 도덕적’이라는 등식도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클수록 새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 한국인의 취향이다. 실망할 때 실망하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이 유권자 생리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과반수의 외부 인사로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를 구성한 것과 위원장을 외부인사에게 맡긴 양당의 개혁공천 실험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정당의 공천을 정치권 바깥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니 정치선진화라고 자랑할 만도 하겠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민주선거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공천이 너무 지지부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궁금증을 키우는 것이 그런 이중구조의 산물이라면 말이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껏 공천이 끝나지 않았으니 국민이 어떻게 투표권을 행사할 것인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불과 15일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자 개개인의 인물과 공약과 소속정당의 정책을 비교해보려면 공천자 발표는 빠를수록 좋다.
선거법이 바뀌어 후보자 합동연설회도 없어지고 공·사석에서 후보자를 접촉해 인물을 평가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언론매체를 통한 토론회 등 정보취득의 기회가 열려 있다지만 총선에서는 활용도가 높지 않은 채널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누가 누구와 대결하게 되나 하는 기본적인 궁금증으로 목말라 있다. 그런데도 양당은 공식선거전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공천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선거가 전에도 있었던가.
공천경합이 심한 이른바 ‘화약고 지역’ 공천심사를 놓고 공심위와 양당 지도부가 볼썽사납게 대립한 것은 공심위를 형식적인 기구로 여기기에 충분한 이유다. 일찌감치 공천자를 내정 또는 결정해놓고도 “형평의 원칙상 일괄 발표해야 한다”는 당 지도부 입김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은 더욱 그런 의심을 사게 한다.
공천 지지부진 … 국민 알권리 침해
공천심사 회의장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잡음은 더 절망적인 메시지다. 일부 지역 공천내정자 명단이 흘러나왔을 때 박근혜 전 대표는 ‘기가 막힌 일’ ‘이렇게 잘못된 공천’ 같은 격한 표현을 동원해 상대측을 비난했다. 비주류 측 반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공천발표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탈락 대상자들은 더 심한 말과 행동으로 반발하고 있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공천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공심위 제도를 폄하한다. 국민의 마음을 사려는 진정의 왜곡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공심위를 견제하는 당 지도부 입김의 강도를 보면 억울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은 지역 공천 마무리와 전략공천을 둘러싸고 한 번 더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밀실공천, 나눠먹기 공천이란 묵은 이미지의 딱지를 떼기 어렵다는 것을 두 당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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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정치인에 목마르다
거물 정치인과 옛 권력자 측근들이 줄줄이 공천심사 대상에서 탈락한 통합민주당 ‘공천혁명’은 청량제 같은 소식이었다. 한나라당 일부 공천심사에서 현역의원 등이 낙천당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일이다.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이 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탈락된 것이나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 명단에서 4선 의원을 포함한 현역의원 5명이 밀려난 것은 도덕적이고 참신한 정치인을 원하는 국민정서에 대한 응답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분란이 그치지 않으니 아직 우리 정치의 수준은 멀었나보다.
신문지면을 장식한 ‘공천 쿠데타’ ‘박재승의 반란’ ‘공천폭풍’ ‘공천파란’ 같은 어휘에는 도덕적인 정치인을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이 녹아 있다. 아직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보는 것이 좀 이른 감도 있지만 유명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탈락하게 된 사실 하나 만으로도 지나친 평가 같지는 않다.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
당 지도부는 ‘정치현실’을 이유로 선별구제를 요청했다지만 민주당 공천심사위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기준을 밀어붙였다. 당의 요구대로 개별심사를 했으면 꿈도 꾸지 못할 공천혁명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예상 밖의 결정이 있었던 것도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이라 할 것이다.
그간의 공천행태가 어떠했던가를 돌아보면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냉소를 짐작할 수 있다. ‘돈 공천’ ‘밀실공천’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거액의 정치헌금이나 영수 및 계파 보스들의 줄세우기에 좌우된 것이 지난날 하향식 공천의 관행이었다.
그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충분한 견제세력을 확보하자는 것이 이번 통합민주당 공천개혁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래 이명박정부는 국무위원을 포함한 중요 인사에서 거듭 악수를 두어 국민의 실망을 샀다. 마땅히 반대 정치세력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갈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국민에게 변화를 증명할 특별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게 당내의 공통된 위기의식이었다.
뇌물, 알선수재 같은 형사사건에 걸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기준에 걸리는 사람은 유명 정치인만 10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과 비서실장을 비롯해, 현역 국회부의장, 전직 장관과 정권 실세들이 포함되어 있다. 탈락 대상자들과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없을 사람들이 그 소식에 그토록 환호하는 것은 깨끗한 정치인에 대한 목마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물론 법적으로는 피선거권을 침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의 신임을 회복하기 위해 ‘깨끗한 정치인’을 기준으로 정한 것은 당 지도부와 공심위의 합의사항이었으므로 당 공식기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옳다.
탈락 대상자는 대부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복역했거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알선수재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자는 소수다. 억울함과 불편한 심기를 호소할 수 있다. 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받은 것도 당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적도 없는 사람이 공천권을 쥐고 흔든다”는 노골적인 반발도 솔깃하게 들릴 수 있다.
꼭 정치하고 싶다면 당 떠나 무소속으로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불평의 목소리가 클수록 그릇이 더 적어 보인다. 정치자금법이건 알선수재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을 위반해 형이 확정되었던 ‘죄인’이다. 꼭 정치를 하고 싶다면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정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나라 당 탈락자는 경우가 다르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민주당에는 의정활동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람까지도 가려내겠다는 분위기가 있다. 적절하지 않은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을 기억한다면 국민이 왜 그토록 정치인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알 것이다.
거물 정치인과 옛 권력자 측근들이 줄줄이 공천심사 대상에서 탈락한 통합민주당 ‘공천혁명’은 청량제 같은 소식이었다. 한나라당 일부 공천심사에서 현역의원 등이 낙천당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일이다.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이 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탈락된 것이나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 명단에서 4선 의원을 포함한 현역의원 5명이 밀려난 것은 도덕적이고 참신한 정치인을 원하는 국민정서에 대한 응답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분란이 그치지 않으니 아직 우리 정치의 수준은 멀었나보다.
신문지면을 장식한 ‘공천 쿠데타’ ‘박재승의 반란’ ‘공천폭풍’ ‘공천파란’ 같은 어휘에는 도덕적인 정치인을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이 녹아 있다. 아직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보는 것이 좀 이른 감도 있지만 유명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탈락하게 된 사실 하나 만으로도 지나친 평가 같지는 않다.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
당 지도부는 ‘정치현실’을 이유로 선별구제를 요청했다지만 민주당 공천심사위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기준을 밀어붙였다. 당의 요구대로 개별심사를 했으면 꿈도 꾸지 못할 공천혁명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예상 밖의 결정이 있었던 것도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이라 할 것이다.
그간의 공천행태가 어떠했던가를 돌아보면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냉소를 짐작할 수 있다. ‘돈 공천’ ‘밀실공천’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거액의 정치헌금이나 영수 및 계파 보스들의 줄세우기에 좌우된 것이 지난날 하향식 공천의 관행이었다.
그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충분한 견제세력을 확보하자는 것이 이번 통합민주당 공천개혁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래 이명박정부는 국무위원을 포함한 중요 인사에서 거듭 악수를 두어 국민의 실망을 샀다. 마땅히 반대 정치세력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갈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국민에게 변화를 증명할 특별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게 당내의 공통된 위기의식이었다.
뇌물, 알선수재 같은 형사사건에 걸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기준에 걸리는 사람은 유명 정치인만 10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과 비서실장을 비롯해, 현역 국회부의장, 전직 장관과 정권 실세들이 포함되어 있다. 탈락 대상자들과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없을 사람들이 그 소식에 그토록 환호하는 것은 깨끗한 정치인에 대한 목마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물론 법적으로는 피선거권을 침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의 신임을 회복하기 위해 ‘깨끗한 정치인’을 기준으로 정한 것은 당 지도부와 공심위의 합의사항이었으므로 당 공식기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옳다.
탈락 대상자는 대부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복역했거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알선수재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자는 소수다. 억울함과 불편한 심기를 호소할 수 있다. 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받은 것도 당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적도 없는 사람이 공천권을 쥐고 흔든다”는 노골적인 반발도 솔깃하게 들릴 수 있다.
꼭 정치하고 싶다면 당 떠나 무소속으로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불평의 목소리가 클수록 그릇이 더 적어 보인다. 정치자금법이건 알선수재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을 위반해 형이 확정되었던 ‘죄인’이다. 꼭 정치를 하고 싶다면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정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나라 당 탈락자는 경우가 다르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민주당에는 의정활동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람까지도 가려내겠다는 분위기가 있다. 적절하지 않은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을 기억한다면 국민이 왜 그토록 정치인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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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대한민국 중추신경
목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통증클리닉에 다녀와서 정부 중앙청사 화재 소식을 들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라 여겼다. 아무러면 나라의 신경중추인 정부 중앙청사에 불이 나겠는가. 국보 1호를 태워먹은 화재에 격앙된 국민에게 미안해서라도 그런 일이 또 일어나도록 방심했겠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뻘건 불꽃이 정부청사 창밖으로 혀를 날름거리는 TV 뉴스를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야?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건가! 주위 사람 모두가 이런 충격을 느꼈다 한다.
불길이 그쯤에서 잡혔기에 다행이지, 숭례문처럼 온몸에 시뻘건 불 이불을 덮어쓰고 타다가 무너져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부청사에 불이 난 것도 창피한 일이지만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애써 자위할 일일까.
스프링클러 없고 소화기는 작동 않고
정부 중앙청사가 어떤 곳인가. 나라의 중추신경인 정부 각 부처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처가 모여 있는 곳이다. 불 난 곳은 국무총리실 바로 앞방인 국무조정실 핵심 공간이다. 행정자치부 소방방재청같은 안전행정 사령탑도 다 이 건물에 있다. 방재업무 사령탑에 불이 났으니 경찰청 금고가 털린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낡은 건물이라 해도 나라의 중추신경이 다 모여 있는 곳에 불이 나서 여러 부처의 업무가 마비되고 중요한 서류가 소실되다니 …. 이산가족 관련 공문서가 손상을 입었다면 면회업무는 괜찮을 런지. 입버릇처럼 선진국 타령을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리 정권말기라 해도 동의할 수 없는 국정의 총체적 난맥상이다.
목 디스크 통증은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같은 요법으로 치유할 수 있다. 정 어려우면 수술요법도 있다. 그러나 중추신경이 고장나면 몸 전체의 통증과 마비 현상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화타나 편작 같은 명의를 만나도 정신장애나 반신불수 정도면 행운이다.
숭례문 화재 때도 확인되었듯이 이번 중앙청사 화재에서도 나사가 빠지고 금간 곳이 여러 군데 드러났다. 가장 기초적인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호원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다.
이 건물에서는 1999년 7월에도 선풍기 과열로 불이 났었다. 그 때도 제때 점검을 받지 않은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소화전은 수압이 약해 무용지물이었다. 그 때 정부는 소방방재시설을 보완한다고 부산을 떨었으나 스프링클러는 1층에만 설치되었을 뿐 2층부터 19층까지는 손길이 닿지 않았다.
방화벽이나 제연시설 같은 기본적인 설비만 되어 있었어도 이런 난리는 없었을 것이다. 사무실 집기의 불연화와 방염처리 조치가 되어 있었다면 불은 번지고 싶어도 번질 수 없는 법이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판이다.
안전행정 당국자들은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건물이라서 소방시설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70년이고 공공건물에 스프링클러 시설이 의무화된 소방법 개정은 1973년이었다”면서 그런 방화시설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시설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어서 방재시설을 보완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대다수 건물은 이런 재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변명부터 나오는 그들에게 나라살림을 맡기고 오늘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정신 차렸다면
지난 1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정신을 차렸다면 숭례문과 정부중앙청사는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이웃나라는 한 번의 실수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 방재 선진국이 되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더 태워먹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국세청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되고, 국정원장이 목숨보다 소중한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옷을 벗고,청와대 비서진이 업자와 유착된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근래의 공직기강 문란상은 나라의 중추신경에 고장이 있다는 경보의 발령이었다. 며칠 후 바통을 이어받을 새 정권 관계자들은 현 정권의 마비된 신경을 조롱할 일이 아니라 이 교훈을 자양으로 삼아 ‘실패학’ 전문가가 되기 바란다.
* 이 글은 내일신문('08.02.22)과 동시게재 되었습니다.
목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통증클리닉에 다녀와서 정부 중앙청사 화재 소식을 들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라 여겼다. 아무러면 나라의 신경중추인 정부 중앙청사에 불이 나겠는가. 국보 1호를 태워먹은 화재에 격앙된 국민에게 미안해서라도 그런 일이 또 일어나도록 방심했겠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뻘건 불꽃이 정부청사 창밖으로 혀를 날름거리는 TV 뉴스를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야?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건가! 주위 사람 모두가 이런 충격을 느꼈다 한다.
불길이 그쯤에서 잡혔기에 다행이지, 숭례문처럼 온몸에 시뻘건 불 이불을 덮어쓰고 타다가 무너져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부청사에 불이 난 것도 창피한 일이지만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애써 자위할 일일까.
스프링클러 없고 소화기는 작동 않고
정부 중앙청사가 어떤 곳인가. 나라의 중추신경인 정부 각 부처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처가 모여 있는 곳이다. 불 난 곳은 국무총리실 바로 앞방인 국무조정실 핵심 공간이다. 행정자치부 소방방재청같은 안전행정 사령탑도 다 이 건물에 있다. 방재업무 사령탑에 불이 났으니 경찰청 금고가 털린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낡은 건물이라 해도 나라의 중추신경이 다 모여 있는 곳에 불이 나서 여러 부처의 업무가 마비되고 중요한 서류가 소실되다니 …. 이산가족 관련 공문서가 손상을 입었다면 면회업무는 괜찮을 런지. 입버릇처럼 선진국 타령을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리 정권말기라 해도 동의할 수 없는 국정의 총체적 난맥상이다.
목 디스크 통증은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같은 요법으로 치유할 수 있다. 정 어려우면 수술요법도 있다. 그러나 중추신경이 고장나면 몸 전체의 통증과 마비 현상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화타나 편작 같은 명의를 만나도 정신장애나 반신불수 정도면 행운이다.
숭례문 화재 때도 확인되었듯이 이번 중앙청사 화재에서도 나사가 빠지고 금간 곳이 여러 군데 드러났다. 가장 기초적인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호원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다.
이 건물에서는 1999년 7월에도 선풍기 과열로 불이 났었다. 그 때도 제때 점검을 받지 않은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소화전은 수압이 약해 무용지물이었다. 그 때 정부는 소방방재시설을 보완한다고 부산을 떨었으나 스프링클러는 1층에만 설치되었을 뿐 2층부터 19층까지는 손길이 닿지 않았다.
방화벽이나 제연시설 같은 기본적인 설비만 되어 있었어도 이런 난리는 없었을 것이다. 사무실 집기의 불연화와 방염처리 조치가 되어 있었다면 불은 번지고 싶어도 번질 수 없는 법이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판이다.
안전행정 당국자들은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건물이라서 소방시설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70년이고 공공건물에 스프링클러 시설이 의무화된 소방법 개정은 1973년이었다”면서 그런 방화시설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시설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어서 방재시설을 보완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대다수 건물은 이런 재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변명부터 나오는 그들에게 나라살림을 맡기고 오늘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정신 차렸다면
지난 1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정신을 차렸다면 숭례문과 정부중앙청사는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이웃나라는 한 번의 실수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 방재 선진국이 되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더 태워먹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국세청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되고, 국정원장이 목숨보다 소중한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옷을 벗고,청와대 비서진이 업자와 유착된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근래의 공직기강 문란상은 나라의 중추신경에 고장이 있다는 경보의 발령이었다. 며칠 후 바통을 이어받을 새 정권 관계자들은 현 정권의 마비된 신경을 조롱할 일이 아니라 이 교훈을 자양으로 삼아 ‘실패학’ 전문가가 되기 바란다.
* 이 글은 내일신문('08.02.22)과 동시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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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린 국민참여 재판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국민 참여재판은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주권행사 길이 열렸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에 대한 국민의 참여는 그런대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유독 사법권에 한해서만은 ‘그들만의 재판’이라는 인식의 울타리가 둘러쳐졌던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 재판을 취재한 보도진은 “왜 진작 이렇게 친절한 재판제도를 갖지 못했는지 아쉬웠다”는 요지의 감상을 보도하고 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들도 “딱딱한 법정이라는 선입견이 싹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국민 참여재판은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주권행사 길이 열렸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에 대한 국민의 참여는 그런대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유독 사법권에 한해서만은 ‘그들만의 재판’이라는 인식의 울타리가 둘러쳐졌던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 재판을 취재한 보도진은 “왜 진작 이렇게 친절한 재판제도를 갖지 못했는지 아쉬웠다”는 요지의 감상을 보도하고 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들도 “딱딱한 법정이라는 선입견이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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