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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더니, 차떼기 당 낙천자들이 모인 당은 할 수 없더군.”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간다고 안 샐까!” “나는 깨끗한 옥양목이요, 하던 당들도 다 마찬가지던데 뭘!” “그래도 차떼기 당 탈락자 정당보다는 좀 낫더라.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 숙이는 걸 보면 말이야.” “돈 받아먹고 공천해준 사람들이 돈 받은 건 시인하면서도 대가성 없는 차입금이라고 잡아떼는 걸 보면 측은한 생각도 들더라.” “돈 받은 것 확인됐으면 잡아넣을 일이지, 대가성 수사는 또 뭐야!” 4·9총선 비례대표 ‘돈 공천’이 화제에 오른 점심모임에서 저마다 저 한마디씩 내뱉은 말들이다. 좀 심한 비유와 감정에 치우친 말이긴 하지만 그대로 인용해 본 것은 정치인에 대한 ‘뿔난 민심’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함이다. 전문직 등용 참뜻 외면 비난의 화살은 친박연대라는 급조정당에 빗발처럼 쏟아졌다. 비례대표 1번 후보가 16억5000만원을 낸 사실이 들통난 데다가 지역구 당선자 한 사람이 10억원을 뿌린 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와 관련해서는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주고받을 수 없도록 개정된 선거법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어쩌자고 그렇게 간 큰 일을 저질렀는지 참 모를 일이다. 이 정당의 대표가 한 일은 너무 비상식적이다. 비례대표 1번 후보자를 혼자 결정해 ‘공천이 아니라 사천(私薦)’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그렇고, 선거 홍보대행 업무를 자신의 가족이 이사로 있는 회사에 맡겨 예산을 집행한 것도 당을 사당(私黨)처럼 주물렀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한 월권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는 ‘돈 공천’이니 ‘錢國區’니 하는 비난을 샀던 전국구 제도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각 분야별로 전문성 있는 인사들과 소수자 대표들을 의회정치에 참여시켜 구석구석 국민의 뜻을 반영시키자는 취지다. 그래서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 의원이 태어났고 시민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의사당에 자리를 갖게 되었다. 각 정당의 비례대표 홀수 번호가 여성 몫으로 굳어진 것도 그 제도의 정착을 상징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관례에 비추어 보면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 양정례 당선자는 적임자가 아니었다. 그는 돈 많은 사업가를 어머니로 둔 부유층이고 전문성과도 거리가 먼 너무 평범한 보통 여성이다. 도덕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하였다. 학력과 경력이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박사모란 단체에 가입한 사실도 없는 사람이 그 단체 여성회장 경력을 내세웠다. 어머니가 이사장인 무슨 연구소의 연구관이라는 것도 상식에 반하는 직함이다. 이런 부풀리기 허위경력 의혹에 대해 그는 “당 실무자의 실수”라고 말했다. 경력이라는 것은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남이 알 수 없는 것이다. 공천신청서는 본인이 써넣은 대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지 당 실무자가 의원 후보자 학력과 경력을 마음대로 써넣을 수는 없는 공문서다. 재산신고에서는 남편 재산을 빠트렸다. 결혼한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그가 16억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당에 냈다는 대목에서는 대번에 ‘아하 그랬구나’ 싶어진다. 처음에는 1억원이라더니, 검찰에 불려가 15억5000만원 더 낸 것을 실토한 모양이다. 그를 발탁한 당 대표는 “선거 비용이 없어 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돈을 낸 대가로 비례대표 1번을 준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가성이란 무엇인가. 무명의 젊은 여성이 서민들은 마음도 먹지 못 할 돈을 내고 ‘정계의 신데렐라’가 되었는데 그것이 공천대가가 아니라면 삼척동자도 웃을 것이다. “등록마감 전날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마감 30분을 앞두고 팩스로 받은 명단에 비례대표 1번으로 올라 있어 놀랐다”는 한 당직자의 실토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현실정치에 배반감·절망감 옥양목처럼 희고 깨끗하다던 정당들도 진흙탕에서 놀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정정치를 표방한 신생정당이나, 공천혁명 한다고 요란했던 야당마저 비례대표 당선자에게서 거액을 빌렸다니 이제 무슨 낯으로 ‘깨끗한 정치’를 입에 담을 것인가. 현실정치에 이런 절망감과 배반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여야 모두 부패 전력자의 공천을 배제하겠다면서 클린공천을 외치던 구호를 떠올리면 마치 야바위 사기극을 당한 기분이다 |
'2008/04'에 해당되는 글 4건
- 2008/04/27 민심이 뿔났다.
- 2008/04/20 교육자율화, 이래도 저래도 탈
- 2008/04/12 투표율 높일 대책 세워야
- 2008/04/05 어린이 보호 이래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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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자율적 운영을 옥죄는 갖가지 규제가 풀리게 되어 교육계가 시끌시끌하다. 교육과학부가 15일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한 뒤 일선 교육당국과 교사 및 학생들은 물론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사이에 찬반양론이 무성하다. 다른 행정 분야에서는 규제가 풀릴수록 환영이다. 시민생활이나 기업활동 어떤 분야건 정부의 간섭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민생활 모든 분야는 구성원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에 맡기는 것이 민주사회의 제 모습이다. 그런데 일선 교육당국과 학교에 자율권을 주겠다는 데도 이렇게 시끄러우니 교육문제는 역시 국민 개개인에게 가장 민감한 관심사인 모양이다. 교육과학부가 발표한 ‘학교자율화 3단계 추진계획’은 초중고교 운영에 대해 장관의 포괄적인 장학 지도권을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제7조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교원인사권을 각 지방 교육감에게 이양하고 교육현장의 민감한 현안인 우열반 편성, 0교시 수업, 심야 보충수업, 사설 모의고사, 방과 후 학교 학원 개방 등을 교육감 또는 학교장 재량에 맡기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역별 학교별로 원하는 것은 허용해야 행정은 지방정부 또는 주민자치에 맡기고 중앙정부는 지방행정이 큰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에 그쳐야 한다는 자치행정의 이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규제와 제약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하물며 지역에 따라, 계층에 따라, 학업성취도에 따라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교육현안에 대해 중앙정부가 일률적인 잣대로 규제일변도의 정책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이 조치에 대해 전교조는 16일 정부 중앙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교육의 공공성을 포기한 정책”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교육 대재앙의 선포’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진보적인 성격의 학부모 단체들도 학생들의 입시경쟁 스트레스 가중을 우려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에 한국교총 같은 교원단체는 “실질적인 지방교육 자치를 이룰 절호의 기회”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같은 항목이라도 세부항목에서 또 의견이 갈리게 돼 있다. 한쪽의 목소리에 다른 한쪽의 목소리가 파묻혀서는 안된다. 한 언론사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중등교육국장 등 핵심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 지역에 따라 항목에 따라 각양각색의 의견이 나왔다. 가장 민감한 우열반 문제에 관해서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인가 하면, 지방에는 분명한 반대와 찬성 의견이 공존했다. 같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심야 보충수업, 사설학원 모의고사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교원인사권 이양에 대해서는 모든 응답자가 찬성이었다. 바로 그것이다. 지역별로 학교별로 원하는 것은 하고 싫은 것은 물리치면 된다. 방과후 사설학원 강사를 초청한 학습지도 문제만 해도 사교육이 성행하는 도시지역에서는 학부모도 학생도 외면할 것이다. 그러나 학원이 없는 시골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학교교육 이외의 교육을 받아볼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므로 무조건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규제 푼다고 너무 빨리 나가는 조급성이 문제 문제는 규제를 푼다고 너무 빨리 나가는 조급성이다. 교육과학부는 3단계 학교자율화 조치와 함께 일선 학교에 대한 29개 지침까지 모두 폐지해 버렸다. 이 속에는 교사에게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지침, 부교재 채택 부조리를 막기 위한 부교재 선정 지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선 교육현장에 만연되어 문제가 끊이지 않는 부조리 근절 장치까지 규제로 보아서는 안된다. 지방 관서가 대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편달하고, 잘 하는 것은 상을 주어 더욱 잘 하게 하는 조장행정이 중앙 행정기관이 지향할 방향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도록 이끌어주고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각각의 존재이유다. 과외교육과 성적경쟁을 무슨 범죄인 양 거부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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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높일 대책 세워야
18대 총선은 흥미진진한 승부와 화제의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그 흥미에 못지않은 걱정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 46.0%는 17대 총선에 비해 무려 14.6%, 역대 총선 최저투표율로 기록되었던 16대에 비해서도 11.2%가 떨어졌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제주도도 53.5%에 불과했고 서울은 45.7%, 인천은 42.2%를 기록했다.
투표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투표 참여자에게 고궁과 박물관 입장료 할인혜택을 주는 인센티브제가 처음 실시된 것이 한가지 사례다. 교통이 불편한 도서지방이나 산간벽지 유권자들을 위해 1000여대의 차량과 20여척의 선박편을 제공하는 배려도 있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 적나라하게 드러나
투표율이 저조하자 9일 오후에는 유권자 개개인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메시지 호소작전도 있었다. 필자가 받은 메시지는 “투표율 저조! 남들이 하겠지 생각 마시고 소중한 한표 꼭 행사하시길 바랍니다”였다.
발신자 번호를 식별할 수 없어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발신자가 선관위 측이건 투표율이 낮으면 불리하다고 생각한 특정 후보 측이건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적극적인 참여 캠페인이 있었는데도 직접선거 제도의 마지노선이라는 50%를 크게 못 미친 것은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국 규모 선거의 최저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 때의 48.9%였다. 총선거가 지방선거 최저투표율보다 낮아진 것은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투표율이 50%가 안되면 당선자가 40%를 얻었다고 해도 전체 유권자 20%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셈이다.
득표율이 30%대로 내려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투표율 30%대인 선거구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 30%대 선거구가 20곳이었다. 경기 시흥을 선거구는 34%였다. 이런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를 했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각 언론매체들은 투표율이 갑자기 낮아진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 한다.
“귀찮기도 하고, 내가 투표해 봐야 청년실업문제가 해결되거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누굴 찍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안했다.” “늘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지쳤다. 공천싸움을 보면서 마지막 기대까지 접고 맘 편하게 여행이나 다녀왔다.”
신문에 보도된 이런 코멘트는 50%가 넘는 기권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공약이나 정책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없었던 것도 ‘흥행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각 정당의 공천이 너무 늦어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충분히 알 시간이 없었던 것도 큰 요인이다.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선진국들처럼 누가 되든지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정치보다는 여행이나 스포츠 같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러시아는 투표율 50% 안되면 선거 무효화
미국의 국회의원 투표율은 평균 45%, 일본은 1990년대 이후 평균 57%, 영국은 6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그렇게 낮은 것은 총선거가 아니라 중간 선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나라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민주화한 것도 아니고 국민소득으로 보면 까맣게 먼데 투표율만 닮아간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싱가포르나 오스트레일리아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기권자에게 벌칙을 가하기도 하고 러시아같은 나라는 투표율이 50%가 못 되면 선거를 무효화시킨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인 대책은 곤란하지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책들을 연구해야 할 시점에 왔다. 전자투표 제도 도입, 부재자 투표방법 개선, 도서벽지 지역 투표환경 개선 같은 것은 적극 검토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18대 총선은 흥미진진한 승부와 화제의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그 흥미에 못지않은 걱정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 46.0%는 17대 총선에 비해 무려 14.6%, 역대 총선 최저투표율로 기록되었던 16대에 비해서도 11.2%가 떨어졌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제주도도 53.5%에 불과했고 서울은 45.7%, 인천은 42.2%를 기록했다.
투표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투표 참여자에게 고궁과 박물관 입장료 할인혜택을 주는 인센티브제가 처음 실시된 것이 한가지 사례다. 교통이 불편한 도서지방이나 산간벽지 유권자들을 위해 1000여대의 차량과 20여척의 선박편을 제공하는 배려도 있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 적나라하게 드러나
투표율이 저조하자 9일 오후에는 유권자 개개인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메시지 호소작전도 있었다. 필자가 받은 메시지는 “투표율 저조! 남들이 하겠지 생각 마시고 소중한 한표 꼭 행사하시길 바랍니다”였다.
발신자 번호를 식별할 수 없어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발신자가 선관위 측이건 투표율이 낮으면 불리하다고 생각한 특정 후보 측이건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적극적인 참여 캠페인이 있었는데도 직접선거 제도의 마지노선이라는 50%를 크게 못 미친 것은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국 규모 선거의 최저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 때의 48.9%였다. 총선거가 지방선거 최저투표율보다 낮아진 것은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투표율이 50%가 안되면 당선자가 40%를 얻었다고 해도 전체 유권자 20%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셈이다.
득표율이 30%대로 내려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투표율 30%대인 선거구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 30%대 선거구가 20곳이었다. 경기 시흥을 선거구는 34%였다. 이런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를 했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각 언론매체들은 투표율이 갑자기 낮아진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 한다.
“귀찮기도 하고, 내가 투표해 봐야 청년실업문제가 해결되거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누굴 찍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안했다.” “늘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지쳤다. 공천싸움을 보면서 마지막 기대까지 접고 맘 편하게 여행이나 다녀왔다.”
신문에 보도된 이런 코멘트는 50%가 넘는 기권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공약이나 정책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없었던 것도 ‘흥행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각 정당의 공천이 너무 늦어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충분히 알 시간이 없었던 것도 큰 요인이다.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선진국들처럼 누가 되든지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정치보다는 여행이나 스포츠 같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러시아는 투표율 50% 안되면 선거 무효화
미국의 국회의원 투표율은 평균 45%, 일본은 1990년대 이후 평균 57%, 영국은 6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그렇게 낮은 것은 총선거가 아니라 중간 선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나라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민주화한 것도 아니고 국민소득으로 보면 까맣게 먼데 투표율만 닮아간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싱가포르나 오스트레일리아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기권자에게 벌칙을 가하기도 하고 러시아같은 나라는 투표율이 50%가 못 되면 선거를 무효화시킨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인 대책은 곤란하지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책들을 연구해야 할 시점에 왔다. 전자투표 제도 도입, 부재자 투표방법 개선, 도서벽지 지역 투표환경 개선 같은 것은 적극 검토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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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어린이 유괴살해와 성폭행미수 사건으로 세상이 들끓고 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살아만 있기를 간구했던 혜진이와 예슬이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은 피해자들만의 충격이 아니었다. 아이를 둔 부모나 가족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개연성이 아니라도, 반항능력이 없는 어린이를 범죄대상으로 삼은 비열함이 치를 떨게 했다. 이런 분노와 절망의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일산 어린이 성폭행미수사건이었다. 여자아이를 납치하려고 흉기를 휘두르고 발로 차는 범인의 동영상 자료를 보고도 단순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는 뉴스에 낙망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화가 난 대통령이 경찰서에 달려가 태만을 질책하자 한나절만에 “여기 있습니다” 하고 범인을 붙잡았다. 처벌 강화해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뉴스는 없었던 것만 못했다. 붙잡기 어려운 지능범이려니 했으면 그냥 잊어졌을 사건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질책이 끝나기가 무섭게 범인을 잡아 대령했으니 훔친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들켜 마지못해 내놓은 꼴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경찰을 믿고 어떻게 살겠느냐”는 개탄과 한탄은 엄살도 호들갑도 아니다. 하교시간이면 아이를 데리러 가는 엄마들이 학교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서울 송파구 같은 곳에서는 구청이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고 등하교 시간에 경비원을 교문 앞에 배치하고 있다. 경찰이 있는 나라에서 민간 경비원을 고용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표’를 의식한 정부와 정당마다 대책을 쏟아내기 바쁘다. 1일 국무회의에서는 어린이 성폭행사범 처벌을 강화하고 유전자감식 정보를 채취해 수사와 재판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개정 법률을 ‘혜진 예슬법’이라 부르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 사건을 잊지 말자는 뜻을 담았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전에 나왔던 대책들을 재탕삼탕한 것이다. 이런 ‘즉석구이’ 대책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까. 들여다보면 범죄자 처벌을 강화한 것 뿐 예방에 관한 것은 별로 없다. 어린이 상대 범죄자 처벌을 강화해 사회와 오랜 기간 격리시키는 것은 그 기간의 재범을 막을 수 있으므로 일정한 효력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일산사건의 경우도 범인을 오래 격리했으면 없었을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형벌이 아닌한 영원히 세상과 격리시킬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범죄의 발생을 막을 사회적인 시스템과 어린이 상대 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있다. 범행의사를 품었어도 감시망이 잘 되어 있으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법이다. 거기에 검거율이 높으면 더욱 마음먹기 어렵게 된다. ‘저지르면 붙잡힌다’는 인식이 생기면 욕구를 억제하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 시스템 확립이다. 학교 주변이나 어린이가 많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감시망과 보호망만이라도 촘촘히 짜야 한다. 어린이 범죄 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기구나 조직도 필요하면 검토해야 한다. 입버릇처럼 인력타령 예산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발상을 바꾸어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영국은 지역마다 경찰에 어린이학대 수사본부를 두어 각종 교육기관 단체 등과 연계해 우범자 정보교환, 예방교육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어린이 대상 범죄 예방시스템 확립 서두르자 성폭행이나 유괴같은 범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어린이의 신체나 정서에 위해가 되는 가벼운 가해행위들도 엄하게 처벌하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성인을 상대로 한 범죄보다 용이하다는 인식 때문에 어린이 상대 범죄의 유혹은 많을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자기보호 능력이나 피해의식이 미약하기 때문에 미수에 그쳐도 처벌을 받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도 그런 유혹을 키우는 요소다. 미국에서는 어린이를 집안에 혼자 두는 것도 위법이다. 귀여움의 표시로 여기는 가벼운 신체접촉도 범죄행위가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유도할 법제의 연구도 필요한 때가 되었다. 총선을 의식한 급조 대책만 쏟아낼 일이 아니라, 어린이 상대 범죄 예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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