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에서 돈뭉치를 돌리던 한나라당 예비공천자가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흙탕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날 오래 기다린 단비가 왔지만 흙탕물은 싫은 법이다. 사건이 난 곳이 하필이면 연고지여서 더욱 께름칙했다. 순박한 사람들이 줄줄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고 내가 당할 일처럼 두렵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청도군수 재선거 때 돈봉투 받은 주민 수백명이 경찰서에 불려다닌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마음이 이번 같지는 않았다. 연고지 일이라서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라지만 개혁공천의 이름 아래 후보로 ‘영입’된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과연 부패정당 전통이 연면하구나 싶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사건 이래 비리 전력자에게는 공천신청 자격도 주지 않겠다더니 그에게만은 재심까지 해가면서 무리한 공천을 주었다. “한나라당은 돈 선거 DNA를 가진 정당”이라는 야당의 공격을 무슨 말로 반박할 것인가.

국회 노동위 돈봉투사건 주역

그는 그 지역에서 해바라기 정치인, 철새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정권이 바뀌면 햇살 좋은 양지쪽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그에게서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 미국 유학가서 박사학위 받아오고 잘 나가는 기업을 물려받은 재벌가 2세라서 여당 공천 하나는 잘 따는구나 했다.
그는 16대 총선 때 같은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17대 때는 열린우리당 실세와의 공천경쟁에서 패해 당적을 한나라당으로 옮겼고, 이번에 같은 지역구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그의 신청을 접수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예상을 깨고 공천 내정결정을 내렸다. 이것을 당 지도부가 문제삼아 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1993년 국회 노동위원회 ‘돈봉투 사건’으로 실형선고를 받은 전력과 ‘철새’성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래도 심사위는 그에게 공천을 주었다. 심사과정에서 돈봉투 사건이 거론되자 한 당직자는 “국회 돈봉투 사건은 비리가 아니라 노사분규 관련 사건이므로 공천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상대후보에게 이길 가능성도 높다 했다던가.

그의 전력을 모르지 않을 공당의 공천심사위원들 윤리관이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부패정당이라는 비난에 반발할 자격이 없다.
국회 돈봉투 사건이란 이번 말썽의 당사자가 자동차보험 사장으로 있을 때의 사건이다. 노사분규와 관련해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리다 적발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부패가 아니라면 한나라당의 부패는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많은 심사위원들이 그 주장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돈봉투를 받고 눈감아 주었다는 오해를 받은들 무슨 논리로 반박을 할 것인가. 선거구민들에게 돈질을 하는 사람이 당에 그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민주당이 비리 전력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 아들과 비서실장 등 유력정치인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을 때, 한나라당은 “우리는 그런 사람 신청도 안 받는다”고 공언했다. 차떼기사건 이후 천막당사 생활을 하면서 부패전력자는 공천신청도 하지 못 하도록 당헌과 당규를 바꾸어 부패정치인 배제를 시스템화했다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번 선거는 전에 없이 깨끗한 선거가 되려나 했다. 망신을 당할 만큼 당하더니 정신을 차렸나 싶기도 했다. 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도 영남지역 공천에서 국회부의장과 당 최고위원을 포함한 거물 정치인이 많이 탈락했다. 겉보기에는 탈락률도 높고 유력 정치인 탈락도 더 많아 뭔가 변화가 보이는 것 같았다.

‘공천신청도 안 받는다’더니

그런 기대와 관심도에 한나라당은 돈뭉치 사건으로 응답했다. 민심이 부글부글 들끓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인책론만 무성할 뿐 두 패로 갈라진 세력 간의 ‘네 탓’ 공방뿐이다.
돈뭉치를 받은 정선사람만 구속이라는 날벼락을 당하고 당사자와 책임질 당직자들은 ‘재수 없는 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러고도 ‘안정 의석’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국민성공 시대를 만들겠다더니 ‘성공한 국민만의 시대’가 되었다”는 시정의 쑥덕거림이 한나라당 사람들에게는 왜 들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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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랑 2008/04/0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나라당의 구성원들 성향이 그러하니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돈봉투, 성추행 등 볼썽사나운 일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대운하, 국민에게 물어보라

한반도대운하 건설 문제는 오는 4월9일 총선 때 국민의 생각을 직접 물어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대규모 국책사업은 국민투표 같은 절차를 거쳐 결정해야 반대세력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대운하사업은 영락없는 국민투표 감인데 때마침 총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안성맞춤 아닌가.

국민투표란 하자 말자 하는 논의에서부터 하기로 결정되면 날 잡고, 준비하고, 국민에게 투표를 부탁하는 일 등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그런데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 치르게 되는 총선거보다 국민의 뜻을 알아보기 좋은 찬스가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대표공약은 한반도대운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선 기간 중 대운하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BBK 의혹, 경제 살리기 같은 당면 이슈에 정신이 팔려 뒷전으로 밀린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운하가 정면으로 화제에 오르는 것 자체를 기피했다. 반대의견을 가진 유권자들을 자극해서 손해볼 일이 무어냐는 생각인 것 같았다.

한나라당 총선공약에서 대운하 사라져

그런데 4·9 총선에서도 대운하는 또 공식이슈가 되지 않게 되었으니 이상한 일이다. 한나라당 총선공약에서 대운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나라당 정책 담당자는 한 언론사의 질문에 대해 “대운하 문제로 오해를 빚거나 불완전한 부분을 잘 다듬어 국민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보완도 안 된 것을 공약에 덜컹 넣어서 괜스레 이슈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운하 얘기가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 다듬어야할 것이 있다는 말인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총선공약에 올려 법으로 보장되고 비용까지 지원되는 정책홍보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옳지, 공약에서 빼고 언제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것인가.

청와대 관계자들도 “대운하와 새만금사업 등은 총선 이후에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총선에서는 이슈로 삼지 않겠다는 속내가 드러나는 언급이다.
대통령의 얼굴 공약인 대운하 문제를 두 번이나 국민의 심판대에서 내려놓는 것은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서울시 부시장 출신의 건설행정 경력자를 내세워 곧 착공할 것처럼 서두른 것이 불과 두 달 전 일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는 발표가 있었고, 대형 건설사들이 재빨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사 수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근래의 동향이다. 엊그저께는 대운하 건설예정지인 경기도의 한 군에서 ‘한반도대운하 지지결의대회’가 열렸다.

공식적으로는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일이므로 정부로서는 추진계획이 없다”면서도 이렇게 기정사실이 되어 굴러가는 초대형 국책사업을 총선 공약 리스트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것은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대운하에 대한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불안해서일까. 대선 당시만 해도 찬성과 반대가 엇비슷했지만, 갈수록 반대여론이 확산되는 추세가 무서운 모양이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에는 찬성 39.9%, 반대 49%였다. 그러다가 2월에는 38.7 : 52.3%, 3월에는 31.6 : 58.4%로 격차가 벌어졌다. 조사기관마다 조금씩 수치는 다르지만 찬성보다 반대가 많아지는 것은 일관된 추세다.

총선 끝나면 다시 들고 나올 것인가

한나라당이 대운하를 총선공약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속내를 거기서 읽을 수 있다. 총선이 끝나면 다시 들고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상상하기도 두려운 모습이 그려진다. 사업추진 세력들은 제철 만난 무엇처럼 활개를 칠 것이고 반대운동은 그에 조금도 밀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스님 한 사람의 반대투쟁으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구간 공사가 오래 중단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운하 반대운동에는 범종교적 연대가 형성되었고 환경운동가들과 지식인·문화인 사회에도 만만치 않은 저지운동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그런 반대를 물리치고 밀어붙일 것인가. 그렇게 해서 ‘경제’를 얻은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의 몫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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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MB 2008/03/24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숨어서 하는 정책이 잘되는 것을 본 일이 없는데 미련한 일들을 하고 있네요...
    좋은 글 보고 갑니다.

  2. 알칸펠 2008/03/25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운하란 짓거리 자체가 미친 짓이고, 저딴 개수작을 부리는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악마들의 집단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공천개혁’의 기대와 우려

한국인의 의식에는 ‘공천 = 밀실 + 돈’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거기에 나눠먹기라는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력자 한 사람의 의중이 공천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3김 시대에도 그 등식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밀실’ 이미지는 완화되었지만, ‘돈’ 과 ‘나눠먹기’ 이미지는 짙어졌다.

4·9 총선이 한 달도 못 남은 시점에서 발표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민주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은 일단 국민의 기대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13일 발표된 양당 일부지역 공천자 명단에는 거물 정치인들이 많이 빠졌다. 한나라당 영남지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계파 좌장격인 당 최고위원을 비롯, 국회부의장 등 현역의원 25명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현역의원 탈락률이 무려 43.5%에 이른다.

최고위원과 대선후보 등 유력정치인 탈락

민주당에서도 지난해 12월 대선후보 경력자, 전직 대통령 아들 등 유력정치인 15명이 탈락했다. 개인비리 대상자 공천배제 원칙과 기준 발표에 이은 연쇄 개혁공천 폭풍이다. 기성정치인 공천탈락이 많아야 개혁인지, 정치신인이 기성정치인보다 유능하고 깨끗한지는 단언할 수 없다. 신인의 등장이 봇물을 이루었던 17대의 경우를 보면 ‘참신함 = 유능함 + 도덕적’이라는 등식도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클수록 새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 한국인의 취향이다. 실망할 때 실망하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이 유권자 생리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과반수의 외부 인사로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를 구성한 것과 위원장을 외부인사에게 맡긴 양당의 개혁공천 실험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정당의 공천을 정치권 바깥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니 정치선진화라고 자랑할 만도 하겠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민주선거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공천이 너무 지지부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궁금증을 키우는 것이 그런 이중구조의 산물이라면 말이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껏 공천이 끝나지 않았으니 국민이 어떻게 투표권을 행사할 것인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불과 15일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자 개개인의 인물과 공약과 소속정당의 정책을 비교해보려면 공천자 발표는 빠를수록 좋다.

선거법이 바뀌어 후보자 합동연설회도 없어지고 공·사석에서 후보자를 접촉해 인물을 평가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언론매체를 통한 토론회 등 정보취득의 기회가 열려 있다지만 총선에서는 활용도가 높지 않은 채널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누가 누구와 대결하게 되나 하는 기본적인 궁금증으로 목말라 있다. 그런데도 양당은 공식선거전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공천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선거가 전에도 있었던가.

공천경합이 심한 이른바 ‘화약고 지역’ 공천심사를 놓고 공심위와 양당 지도부가 볼썽사납게 대립한 것은 공심위를 형식적인 기구로 여기기에 충분한 이유다. 일찌감치 공천자를 내정 또는 결정해놓고도 “형평의 원칙상 일괄 발표해야 한다”는 당 지도부 입김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은 더욱 그런 의심을 사게 한다.

공천 지지부진 … 국민 알권리 침해

공천심사 회의장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잡음은 더 절망적인 메시지다. 일부 지역 공천내정자 명단이 흘러나왔을 때 박근혜 전 대표는 ‘기가 막힌 일’ ‘이렇게 잘못된 공천’ 같은 격한 표현을 동원해 상대측을 비난했다. 비주류 측 반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공천발표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탈락 대상자들은 더 심한 말과 행동으로 반발하고 있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공천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공심위 제도를 폄하한다. 국민의 마음을 사려는 진정의 왜곡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공심위를 견제하는 당 지도부 입김의 강도를 보면 억울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은 지역 공천 마무리와 전략공천을 둘러싸고 한 번 더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밀실공천, 나눠먹기 공천이란 묵은 이미지의 딱지를 떼기 어렵다는 것을 두 당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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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정치인에 목마르다

거물 정치인과 옛 권력자 측근들이 줄줄이 공천심사 대상에서 탈락한 통합민주당 ‘공천혁명’은 청량제 같은 소식이었다. 한나라당 일부 공천심사에서 현역의원 등이 낙천당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일이다.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이 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탈락된 것이나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 명단에서 4선 의원을 포함한 현역의원 5명이 밀려난 것은 도덕적이고 참신한 정치인을 원하는 국민정서에 대한 응답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분란이 그치지 않으니 아직 우리 정치의 수준은 멀었나보다.

신문지면을 장식한 ‘공천 쿠데타’ ‘박재승의 반란’ ‘공천폭풍’ ‘공천파란’ 같은 어휘에는 도덕적인 정치인을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이 녹아 있다. 아직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보는 것이 좀 이른 감도 있지만 유명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탈락하게 된 사실 하나 만으로도 지나친 평가 같지는 않다.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

당 지도부는 ‘정치현실’을 이유로 선별구제를 요청했다지만 민주당 공천심사위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기준을 밀어붙였다. 당의 요구대로 개별심사를 했으면 꿈도 꾸지 못할 공천혁명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예상 밖의 결정이 있었던 것도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고육지책이라 할 것이다.

그간의 공천행태가 어떠했던가를 돌아보면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냉소를 짐작할 수 있다. ‘돈 공천’ ‘밀실공천’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거액의 정치헌금이나 영수 및 계파 보스들의 줄세우기에 좌우된 것이 지난날 하향식 공천의 관행이었다.

그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충분한 견제세력을 확보하자는 것이 이번 통합민주당 공천개혁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래 이명박정부는 국무위원을 포함한 중요 인사에서 거듭 악수를 두어 국민의 실망을 샀다. 마땅히 반대 정치세력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갈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국민에게 변화를 증명할 특별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게 당내의 공통된 위기의식이었다.

뇌물, 알선수재 같은 형사사건에 걸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기준에 걸리는 사람은 유명 정치인만 10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과 비서실장을 비롯해, 현역 국회부의장, 전직 장관과 정권 실세들이 포함되어 있다. 탈락 대상자들과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없을 사람들이 그 소식에 그토록 환호하는 것은 깨끗한 정치인에 대한 목마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물론 법적으로는 피선거권을 침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의 신임을 회복하기 위해 ‘깨끗한 정치인’을 기준으로 정한 것은 당 지도부와 공심위의 합의사항이었으므로 당 공식기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옳다.

탈락 대상자는 대부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복역했거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알선수재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자는 소수다. 억울함과 불편한 심기를 호소할 수 있다. 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받은 것도 당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적도 없는 사람이 공천권을 쥐고 흔든다”는 노골적인 반발도 솔깃하게 들릴 수 있다.

꼭 정치하고 싶다면 당 떠나 무소속으로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불평의 목소리가 클수록 그릇이 더 적어 보인다. 정치자금법이건 알선수재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을 위반해 형이 확정되었던 ‘죄인’이다. 꼭 정치를 하고 싶다면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정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나라 당 탈락자는 경우가 다르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민주당에는 의정활동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람까지도 가려내겠다는 분위기가 있다. 적절하지 않은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을 기억한다면 국민이 왜 그토록 정치인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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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대한민국 중추신경

목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통증클리닉에 다녀와서 정부 중앙청사 화재 소식을 들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라 여겼다. 아무러면 나라의 신경중추인 정부 중앙청사에 불이 나겠는가. 국보 1호를 태워먹은 화재에 격앙된 국민에게 미안해서라도 그런 일이 또 일어나도록 방심했겠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뻘건 불꽃이 정부청사 창밖으로 혀를 날름거리는 TV 뉴스를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야?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건가! 주위 사람 모두가 이런 충격을 느꼈다 한다.

불길이 그쯤에서 잡혔기에 다행이지, 숭례문처럼 온몸에 시뻘건 불 이불을 덮어쓰고 타다가 무너져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부청사에 불이 난 것도 창피한 일이지만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애써 자위할 일일까.

스프링클러 없고 소화기는 작동 않고

정부 중앙청사가 어떤 곳인가. 나라의 중추신경인 정부 각 부처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처가 모여 있는 곳이다. 불 난 곳은 국무총리실 바로 앞방인 국무조정실 핵심 공간이다. 행정자치부 소방방재청같은 안전행정 사령탑도 다 이 건물에 있다. 방재업무 사령탑에 불이 났으니 경찰청 금고가 털린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낡은 건물이라 해도 나라의 중추신경이 다 모여 있는 곳에 불이 나서 여러 부처의 업무가 마비되고 중요한 서류가 소실되다니 …. 이산가족 관련 공문서가 손상을 입었다면 면회업무는 괜찮을 런지. 입버릇처럼 선진국 타령을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리 정권말기라 해도 동의할 수 없는 국정의 총체적 난맥상이다.

목 디스크 통증은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같은 요법으로 치유할 수 있다. 정 어려우면 수술요법도 있다. 그러나 중추신경이 고장나면 몸 전체의 통증과 마비 현상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화타나 편작 같은 명의를 만나도 정신장애나 반신불수 정도면 행운이다.

숭례문 화재 때도 확인되었듯이
이번 중앙청사 화재에서도 나사가 빠지고 금간 곳이 여러 군데 드러났다. 가장 기초적인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호원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다.

이 건물에서는 1999년 7월에도 선풍기 과열로 불이 났었다. 그 때도 제때 점검을 받지 않은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소화전은 수압이 약해 무용지물이었다. 그 때 정부는 소방방재시설을 보완한다고 부산을 떨었으나 스프링클러는 1층에만 설치되었을 뿐 2층부터 19층까지는 손길이 닿지 않았다.

방화벽이나 제연시설 같은 기본적인 설비만 되어 있었어도 이런 난리는 없었을 것이다. 사무실 집기의 불연화와 방염처리 조치가 되어 있었다면 불은 번지고 싶어도 번질 수 없는 법이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판이다.

안전행정 당국자들은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건물이라서 소방시설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70년이고 공공건물에 스프링클러 시설이 의무화된 소방법 개정은 1973년이었다”면서 그런 방화시설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시설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어서 방재시설을 보완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대다수 건물은 이런 재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변명부터 나오는 그들에게 나라살림을 맡기고 오늘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정신 차렸다면

지난 1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정신을 차렸다면 숭례문과 정부중앙청사는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이웃나라는 한 번의 실수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 방재 선진국이 되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더 태워먹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국세청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되고, 국정원장이 목숨보다 소중한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옷을 벗고,청와대 비서진이 업자와 유착된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근래의 공직기강 문란상은 나라의 중추신경에 고장이 있다는 경보의 발령이었다. 며칠 후 바통을 이어받을 새 정권 관계자들은 현 정권의 마비된 신경을 조롱할 일이 아니라 이 교훈을 자양으로 삼아 ‘실패학’ 전문가가 되기 바란다.

* 이 글은 내일신문('08.02.22)과 동시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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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린 국민참여 재판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국민 참여재판은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주권행사 길이 열렸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에 대한 국민의 참여는 그런대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유독 사법권에 한해서만은 ‘그들만의 재판’이라는 인식의 울타리가 둘러쳐졌던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 재판을 취재한 보도진은 “왜 진작 이렇게 친절한 재판제도를 갖지 못했는지 아쉬웠다”는 요지의 감상을 보도하고 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들도 “딱딱한 법정이라는 선입견이 싹 가셨다” “재판부에 의견을 전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로 새 제도를 평가했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첫 국민 참여재판에 대한 일반의 평가까지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사실은 우리 국민의 성숙성을 입증한 사례라 하겠다. 피고인의 유·무죄 평결에서 양형에 이르기까지 배심원단과 재판부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민의 법 상식과 감정이 매우 건전하다는 증거였다.

‘국민의 법 상식과 감정 매우 건전’ 입증

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법조계가 가장 우려했던 점은 배심원들이 어려운 법률용어와 까다로운 재판절차에 대한 선입견으로 지레 움츠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법률지식에 해박한 사람을 가려 뽑은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추출된 일반 시민 가운데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이 피고인의 유·무죄와 양형까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깨끗이 씻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 등 재판의 당사자들이 쉬운 말로 재판절차와 사건경과, 재판의 쟁점 등을 설명한 것이 주효했다고 한다. 전문지식이 없는 배심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변론과 논고를 문서로 만들어 낭독하는 것으로 끝나던 종전의 재판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변화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피해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범행현장에서 검거된 것을 자수로 볼 수 있느냐’ 여부였다. 검사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상처가 가벼운 사실을 알고 동행자에게 범행신고를 부탁한 사실을 들어 자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동행자에게 여러 차례 신고를 부탁한 행위는 자수라는 것을 배심원단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피고인의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을 증인석에 세워 오빠의 딱한 처지를 하소연하게 한 것도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배심원들은 변호인 편을 들어주었다. 감성에 호소한 변호인의 작전이 승리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재판부는 주저없이 그 의견을 받아들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물론 강도상해죄는 집행유예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범행 직후 피해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신고를 부탁한 행위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제도 정착 위해 예산과 인력 보충해야

이번 재판 배심원 후보는 230명에게 통보되었다. 이 가운데 개인적인 사정이 인정된 사람을 제외하고 86명이 법원에 출석해 추첨으로 12명이 뽑혔다. 예상보다 훨씬 높은 40% 가까운 출석률에 고무된 법원 측에서 제도 정착을 낙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그러나 더 손봐야 할 사안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국민 참여재판 기회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재판의 대상은 살인·강도·강간 같은 강력범죄와 고액 뇌물사건 피고인 가운데 희망하는 경우로 국한돼 있다.
올해 들어 이 재판 받기를 신청해 결정이 된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신청을 해도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공적인 제도 출범의 영향으로 신청자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형식적인 재판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제 국민 참여재판이 좋기는 하지만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드는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원은 당당하게 부족한 예산과 인력 보충을 요구하고 관계당국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심정으로 적극 뒷받침해야 모처럼 좋은 평판을 받은 제도의 정착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내일신문('08. 2. 15)과 동시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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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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